울산대학교 의과대학에는 해열이라는 봉사 동아리가 있다. 매년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고 있으며 소아과 병동의 병원학교에서 환아의 공부를 도와주거나 지역 아동 센터의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등 다양한 봉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주가 되는 활동은 건국대 간호대와 함께 진행하는 동대문 쪽방촌 진료 봉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으로서는 다른 데서 해보기 힘든 예진 과정과 복약 지도 등을 체험해보며, 의료인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에 매번 지원자가 많다. 지난 4월 19일에 진행된 동대문 진료 봉사 현장 봉사가 있는 금요일이 되면 미리 신청했던 학생들은 보통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에서 내려, 양꼬치 냄새가 풍기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7시 15분까지 정해진 장소에 도착해서 근처의 모 여인숙 사물함에 있는 책상이며, 예진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과 구비된 약들, 그리고 환자들의 차트를 꺼내놓는다. 7시 반이 되면 진료를 시작하고, 대략 한 시간 후에 마치게 된다. 그러면 진료에 썼던 물건들을 다시 정리해서 사물함에 넣고, 나름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 된다.
이 활동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의 지원 아래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인의협 소속 의사 선생님들도 활동에 참여했었다. 이때는 가정방문 형식으로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질병이 있는 줄 모르고 있는 환자들을 찾아내 적절한 의료기관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기초생활수급자이기에 병원에서 무상으로 더 좋은 관리를 받을 수 있었고, 환자 수도 줄면서 인의협의 지원은 지원금만 지급해주는 형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결국 인의협에서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활동에 회의적인 입장이 되었고, 지난 4월에는 “인천 등지의 난민 진료 활동에 힘쓰고 싶다”며 5월을 끝으로 동대문 진료 봉사에 대한 지원을 끊겠다고 통보했다. 갑작스럽게 활동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지원금을 조달할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는 인의협을 통해 봉사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봉사 시간을 지급했었는데 이마저도 힘들어지게 됐다.
이 때문에 동아리 내에서 봉사 시간을 받지 못해도 봉사를 할 것인지에 대한 투표가 있기도 했었다. 해열의 회장을 맡은 본과 2학년 이영규 학우는 “운이 좋아서 비용을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봉사를 해도 봉사 시간을 받기는 힘들 것” 같았고 “그렇다면 지금 여기저기 비용을 마련하려는 수고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투표에서 진료 봉사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면 활동을 중단하려고까지 마음을 먹었지만 예상 외로 많은 학생들이 봉사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도 봉사 활동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을 했고, 이때 “최선을 다해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이영규 회장은 동아리 지도 교수님을 찾아가 조언을 얻기도 하고 인의협의 사무처장과 면담을 해보며 돌파구를 모색해보았다고 한다.
좋은 소식도 있었다. 다행히도 종로구 동대문쪽방상담센터에서 봉사시간을 지원해줄 수 있다는 약속을 얻어낼 수 있었다. 동대문쪽방상담센터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며 동대문 쪽방촌 주민들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상담사업, 일상생활 지원, 의료 서비스, 취업 알선, 주거 지원, 문화 프로그램, 보건 위생, 행정 법률 안내 등을 지원하는 곳이다.
이제 남은 것은 지원금 문제인데, 인의협에서 지원받던 연간 약 700만원의 금액 중 절반은 약값으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활동에 필요한 시설물들을 사용하는데 쓰이는 비용이다. 이영규 회장은 약값과 관련해서는 “약품을 따로 공급받을 수 있는 경로를 찾아보고 있는 중”이며, 시설물에 대한 비용은 학과 사무실을 통해 교수 협의회 지원금을 비롯한 각종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라고 한다.
비록 환자 수가 많지는 않지만 짬을 내서 동대문에 봉사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환자가 적다는 데서 오는 허탈감이 아니라 뿌듯함이었다. 이는 기자뿐만 아니라 활동에 참여해 온 대다수의 동아리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동대문 진료 봉사가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언제 또 오냐’은 환자 분의 물음에 ‘매주 금요일’이라고 답했던 게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영규 회장은 “더 이상 인의협의 지원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아직 동대문에는 해열에서 지금까지 관리해왔던 환자분들이 계시며 갑자기 철수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또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 중에서 학생으로서 의료인의 자세를 배울 수 있는 다른 기회가 없는 만큼 동대문 진료 봉사가 유지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해열에서 환자마다 따로 정리한 차트를 모아둔 바구니는 꽤 무거워서 혼자서는 들고 옮기기도 힘든 정도이다. 찾아오는 환자가 그리 많지 않지만 그 중에는 몇 년 만에 다시 오시는 분도 계시기에 오래된 차트를 정리해버릴 수 없다. 이렇게 가끔이라도 찾아오시는 환자 분들이, 해열이 지원을 받지 못해도 이 활동을 계속해 나가려는 이유일 것이다. 모쪼록 동대문에서의 진료 봉사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해열의 동대문 진료 봉사는 진료에 참석할 의사 선생님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해열 진료는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30분에 창신동 쪽방촌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7:30~9:00). 혹시 오셔서 울산의대 학생들과 함께 진료를 봐주실 선생님들이 계시다면 아래 이메일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시연 기자 / 울산 <gabe102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