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물뽕', '레이디 킬러' 등의 속된 말로 잘 알려진 데이트 강간 약물(Date Rape Drug). 최근 발생한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 조사 과정 중에서도 클럽 내에서 해당 약물이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발견되어 논란이 되었는데요. 데이트 강간 약물이란 사람을 판단 및 저항 불능 상태에 빠뜨려 궁극적으로 성폭력을 가하려는 의도로 쓰이는 약물들을 말합니다.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분류되는 약물에는 크게 알코올, 벤조다이아제핀, GHB 등 세 가지가 있는데, 모두 각자의 기전으로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행동하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기억을 없어지게 합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런 약물들의 작용과 위험성을 의학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알코올
'아니 술이 왜 데이트 강간 약물이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약물로 인해서 일어나는 성폭행의 가장 많은 원인을 차지하는 약물은 바로 알코올입니다. 아무래도 다른 약물들에 비해서 피해자가 의심 없이 섭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데요. 알코올, 성분명으로 '에탄올'은 중추신경 억제제로서, 농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의식이나 사고, 감각, 운동 기능 등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술을 마시고 잠이 오거나, 이성적인 생각 과정이 잘 진행되지 않거나, 걸음을 잘 못 걷거나 하는 일들이 모두 에탄올이 중추신경을 억제하는 작용을 지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에탄올은 GABAA 수용체의 활성을 증가시키고 NMDA 수용체의 활성을 감소시키는데, 이 두 가지 작용을 통해 중추신경을 억제합니다. 또한, 에탄올은 뇌의 측좌핵(nucleus accumbens)에서 도파민의 분비를 늘려서 기분을 좋게 만들기도 합니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하지만 에탄올은 필요 이상으로 섭취하게 되면 위험해질 수 있는데, 이는 에탄올이 '농도 의존적'으로 중추신경계에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소개될 벤조다이아제핀 등의 다른 약물들과 달리, 에탄올은 혈중 농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는 작용이 강해집니다.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에탄올을 섭취하게 되면, 몸을 가누기 어렵게 되고, 마취상태나 심하게는 혼수상태에도 빠질 수 있습니다.
2. 벤조다이아제핀(Benzodiazepine)
벤조다이아제핀은 의료적으로 사용되는 중추신경 억제제 중 가장 대표적인 약물입니다. 이 약물은 앞서 소개되었던 알코올과 같이 GABAA수용체의 활동을 증가시켜서 중추신경을 억제합니다. 하지만 이 약물은 알코올과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일정 수준 이상으로 혈중 농도가 상승하면, 더 이상 중추신경 억제 효과가 강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알코올보다 인체에 사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의료적으로 쓰이기도 더 좋습니다. 벤조다이아제핀은 공황장애나 불면증의 치료제로써, 혹은 수술이나 시술 시 마취제나 안정제 등, 다양한 방면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안전한 약물이 나쁜 의도로 악용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벤조다이아제핀은 '전향성 기억상실(anterograde amnesia)'이라는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향성 기억상실이란, 특정 약물을 복용한 시점 이후로 일정 기간의 기억이 없어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일정 용량 이상의 벤조다이아제핀을 파티에서 먹었다면, 그 후 몇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죠.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이 약물을 악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기만 합니다. 이런 의도로 쓰이는 대표적인 약물인 '로힙놀(rohypnol)'은 음료에 섞으면 색을 변하게 하지만, 어두운 공간에 있거나 혹은 콜라 같은 어두운색의 음료에 섞이면 잘 알아볼 수 없다고 하니 더욱 조심해야겠습니다.
3. GHB (gamma-hydroxybutyric acid)
감마-하이드록시 뷰티르산, 줄여서 GHB는 흔히 '물뽕'이라고 불리는 약물들의 원래 이름입니다. 이 약물은 앞의 두 약물과 같이 GABA수용체 에도 작용하지만, 그보다는 이와 전혀 다른 수용체인 GHB 수용체의 작용제로써 주된 효과가 있게 됩니다. GHB를 섭취하게 되면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행복감이 증가하고, 어지럼증이나 구토, 근육 풀림, 졸림 등의 증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앞의 약물들과 비슷하게 중추신경계가 억제되고, 외부의 자극에 대해 이성적으로 반응하거나 사고할 수 없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 GHB는 '무색무취'의 물질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술이나 기타 음료에 섞어놓았을 경우 그 음료에 GHB가 들어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때에 따라 짠맛이 나거나 텁텁한 비누 맛이 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맛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구분하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GHB는 소변으로 검출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GHB를 소변으로 검출해내기 위해서는 섭취하고 4시간 이내에 소변을 채취하여야 하는데, 피해자가 자신이 GHB를 섭취했다는 사실을 모르면 소변을 채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데이트 강간 약물들의 작용 기전과 위험성을 의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보았습니다. 세 약물은 기전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중추신경 억제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점 외에도 세 약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의심을 하지 않는 경우 자신도 모르게, 과다한 용량을 섭취하고 정신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파티나 클럽 같은 곳에서 낯선 사람이 술이나 음료를 권한다면, 혹은 술을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몸에 힘이 빠지거나 정신이 흐려지는 느낌이 든다면, 빨리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고 경찰이나 믿을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이현석 기자/울산 giants_so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