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격의료특구 지정, 대한민국 원격 의료 시범 사업의 현주소는?

지난 7월 24일 중소벤처기업부(장관 박영선, 이하 중기부)는 특례심의위원회를 거쳐 7개의 규제자유특구를 발표했다. 이중 강원도 춘천·원주가 ‘디지털헬스케어 사업’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어 이목을 끌었다. 두 도시에 위치한 바이오·의료기기 분야의 기업 및 관련 기관들은 2023년까지 약 400억 원의 사업 지원금을 받는다. 국내에서 원칙적으로는 금지된 의사-환자 간 원격 의료가 규제 특례를 통해 춘천과 원주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이 규제 특례에 따라 향후 2년 간 강원도 원주시와 춘천시·철원군·화천군 격오지에 거주하는 당뇨·고혈압 환자 300명을 대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 의료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는 병원에서 초진을 마친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며, 진단과 처방은 방문 간호사의 입회 하에서만 수행할 수 있다.
강원도는 이번 규제 특례를 통해 원격 의료가 가능해지면 3천여 명의 일자리 창출과 3천억 원의 규모의 생산을 창출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변정권 규제자유특구 지역추진단장은 “20여 년 전부터 강원도 핵심 전략산업으로 투자해 온 의료기기 산업이 이번 규제자유특구 지정을 통해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으로 도약하는 의료기기 혁신 메카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무색하게도 지난 8월 8일까지 강원도 원격 의료 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동네 의원 단 한 곳에 불과했다. 중기부기업부의 관계자는 “원격의료 사업에 관심을 보인 동네의원이 한두 곳 더 있었지만 의료계 눈치를 보느라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규제 특구의 원격 의료 사업에서 효과를 검증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의료계를 설득해 원격 의료를 점차 확대하려던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대한민국에 원격 의료의 도입은 이번 중기부의 규제자유특구 지정 이전에도 꾸준히 논의되어왔다. 2000년 강원도 16개 시·군 보건진료소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시행한 이래로, 보건복지부의 주도 아래 여러 차례 원격 의료 시범 사업이 진행되었다. 보건복지부는 2014년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19대 국회에 제출하고 동년 9월과 2015년 4월, 2016년 9월 총 3차례의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올해 3월 18일 국회 업무 보고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7~18년 동안의 시범사업이 부실했음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시범 사업을 통해 장단점을 분석하여 취할 대목과 개선할 점을 판단하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보건복지부는 올 9월부터 전국 17개 지방자치단체 41개 의료취약지에서 의사-의료인 간 ‘원격 의료 지원 시범 사업’ 시행을 예고했다. 사업이 실시되는 지자체 중 한 곳인 완주군에서 밝힌 원격의료 지원 시범사업은 공보의가 방문간호사에게 의료 관련 전문지식과 치료지침을 미리 알려주고, 방문 간호사는 원격지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바탕으로 의료서비스를 수행하며 처방약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방문 간호사가 환자의 집을 방문해야 한다는 점에서 강원도의 규제 특례와 비슷한 형태로, 정부는 ‘의료인 간 원격의료를 허용한 의료법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위한 편법적 시도라고 비판했다.
한편 대한공중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은 7월 31일부터 8월 20일까지 보건복지부 및 지자체가 추진하는 원격 의료 지원 시범 사업에 대해 모든 공보의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국 30여 곳에서는 이미 원격 의료 시범 사업이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밝혔다. 환자의 수는 지역별 편차가 있지만 월 평균 40명, 많게는 200명에 달했고, 절반 정도의 지역에서는 방문 간호사를 통한 약 배부 및 배달까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공협은 이에 대해서 “방문간호사 대리처방, 처방약 전달은 의료법 및 약사법에 모두 문제가 있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대공협은 원격 진료는 처방 후 증상의 악화와 합병증의 포착이 어렵고, 대면 진료에 비해 환자의 순응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투약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확인하기 어렵기에 진료의 효용성이 높지 않다고 밝혔으며, 원격 진료를 시행하고 있는 공보의들이 ‘만에 하나 의료 사고가 발생할 시 책임 소재 등이 항상 무서울 수밖에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행 의료법에는 ‘원격 의료를 하는 원격지 의사는 환자를 직접 대면해 진료하는 경우와 같은 책임을 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 오상윤 과장은 원격 의료와 관련된 의료 사고의 책임 소재에 대한 공보의들의 우려에 대해서 “참여지역과 협의해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고 해당 지역 공보의 의사도 확인”하기에 “우리가 억지로 시킬 수 있는 사업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지역 상황 등을 고려해 합의 하에 진행하는 것”이라며 참여에 강제성이 없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공협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번 시범 사업은 의료계 및 지역 의사회와 전혀 상의된 적이 없으며 “대다수 공중보건의사들이 원격진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채, 근무지에 원격진료기기가 설치되고 나서야 지자체 소속 공무원으로서의 의무를 근거로 해당 사업에 대해 참여할 것을 강요당했다”고 비판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역시 사업이 원격의료의 법적 근거를 교묘히 왜곡하고 있으며, “환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약자인 공중보건의사를 동원하며 시행되고 있고 막상 의료 사고 시 모든 책임을 의료진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시연 기자 /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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