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개구충제 펜벤다졸! 과연 항암 효과 있을까?

Digital 3d illustration of cancer cells in human body

 

펜벤다졸 복용 환자의
암 완치 사례, 그리고
점점 높아지는 관심

강아지 구충제로 쓰이던 펜벤다졸이 갑자기 화제가 되고 있다. 조 티펜스라는 미국의 말기 소세포폐암 (small cell lung cancer) 환자가 펜벤다졸을 복용한 이후 암이 완치되었다고 밝히면서 펜벤다졸이 암 환자들의 한 줄기 희망으로 떠오른 것이다. 조 티펜스는 2016년 8월 소세포폐암을 진단받았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치료를 받던 중인 2017년 1월, 간, 췌장, 골수 등 전신에 암세포 전이가 일어나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이후 그는 펜벤다졸을 비롯해 비타민E, CBD 오일 등 항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것들을 투약하기 시작했고 그해 5월 PET 검진에서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 완전관해 상태에 도달하게 됐다고 한다. 현재 그는 펜벤다졸로 암을 치료하는 법에 대한 글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펜벤다졸은 원래 기생충 세포 속 미세소관을 구성하는 튜불린(tubulin)에 달라붙어 튜불린의 폴리머화(polymerization)를 억제함으로써 기생충을 죽이는 약이다. 미세소관은 염색체 분열, 세포 내 물질의 운반, 세포 형상의 발달 및 유지 등 다양한 세포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펜벤다졸은 이 미세소관의 형성을 방해함으로써 기생충의 세포가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당분을 흡수하는 것을 방해하고, 나아가 세포 분열을 억제하여 기생충의 사멸을 유도한다. 펜벤다졸이 항암제로서 효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기생충을 죽이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펜벤다졸이 암세포의 성장을 방해하여 항암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말기 암 환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동물병원으로 펜벤다졸에 관해 문의하는 전화가 급증하는 한편, 동물병원에 약을 제공하는 거래처에서도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 펜벤다졸을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어려워지자 해외에서 불법적으로라도 구매하려는 환자도 많다. 뿐만 아니라 펜벤다졸은 수의사의 처방 없이도 동물약국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약품이라 오남용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대한암학회 등을 비롯한 전문 단체들은 펜벤다졸의 효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약품의 사용을 자제하길 권하고 있지만 대중들의 관심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오히려 펜벤다졸을 복용하면서 주기적으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유튜브에 공유하고 있는 몇몇 암 환자들이 큰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도 폐암 투병 중인 개그맨 김철민 씨가 펜벤다졸을 복용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사례는 있지만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사실 펜벤다졸이 항암 효과를 보인다는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논문에서 세포실험이나 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이들 중 다수에서 펜벤다졸이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들은 펜벤다졸을 항암제로 암 환자에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근거로 활용되기에 매우 빈약한 수준이다. 실제로 펜벤다졸처럼 세포 실험이나 동물 실험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임상 실험에서는 효과가 증명되지 못해서 실패한 항암제의 사례는 상당히 흔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암이 완치된 사례도 ‘조 티펜스’ 단 한 건뿐이며, 이조차도 펜벤다졸 하나만 복용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 항암제 등 다른 치료가 동반되었기 때문에 펜벤다졸이 조 티펜스의 완전관해를 이끌어냈다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또한 펜벤다졸 외에도 기존의 약이 항암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는 꽤 많다. 당뇨약, 고지혈증 치료제 등 기존에 쓰던 약들의 항암 효과를 연구하는 비영리 프로젝트인 ReDO(Repurposing Drugs in Oncology)에서 항암 효과가 있는 약들의 목록에 올린 약의 가짓수는 290 여종에 달한다. 이들 중 약간이라도 근거가 있는 약들만 추려내도 70종이나 된다. 대중들이 펜벤다졸에 주목하고 있지만 펜벤다졸 정도의 가능성을 가진 약들만 해도 이렇게 많다는 것이다.
이것 말고도 펜벤다졸이 정말 효과가 있을지 미심쩍은 이유는 많다. 우선 조 티펜스가 치료에 사용한 용량은 하루 222mg으로, 대략 4.5kg 정도의 강아지가 먹는 양이다. 명승권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환자가 50kg라고 가정해도 대략 2,500mg을 먹어야 하는데 이보다 훨씬 적은 용량으로 효과가 있다고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라고 말했다. 또 펜벤다졸은 원래 인체 흡수율이 낮은 약이다. 펜벤다졸과 구조와 효능이 비슷해 사람에게서 구충제로 쓰이는 알벤다졸 역시 인체 흡수율이 10% 미만이다. 이렇게 낮은 흡수율 때문에 구충제가 장내에 남아서 기생충을 죽이는 데 더 유리하며, 전신 부작용은 적게 나타나는 것이다. 펜벤다졸의 복용법에 관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논란이 된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김 모씨도 구충제의 작용 원리가 사람과 같은 포유류의 고등 세포보다는 기생충 같은 하등 세포에 더 독성을 나타내며, 3일 동안 연달아 복용하더라도 대부분 체외로 배출되어 인체에 안전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정말 인체가 흡수하는 양이 많지 않다면 어떻게 암세포에게서만은 극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펜벤다졸, 정말
먹어도 되는 걸까?

물론 펜벤다졸이 정말로 항암 효과를 나타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임상 연구 결과만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암 환자들에게 처방될 수 있다. 이미 펜벤다졸과 비슷한 효과를 갖는 구충제인 알벤다졸과 미벤다졸에 대해서 항암 효과의 임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파클리탁셀 등 기존의 항암제 중에서도 펜벤다졸과 비슷하게 미세소관에 작용하는 약들이 있다.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에 대한 임상 연구가 유의미한 이유이다. 하지만 펜벤다졸은 이미 개발된 지 오래되어 특허가 만료되었기 때문에 제약 회사에서 큰 비용을 들여 임상 실험을 할 이유가 없다. 실패할 가능성도 높고, 성공하더라도 싼 가격의 복제약들이 많아서 회사에게는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11월 4일에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이렇게 민간 부문에서 임상 연구를 진행할 유인이 없기 때문에 식약처가 앞장서서 펜벤다졸에 대한 임상 실험을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11월 7일, “다른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는 진행성 암 환자와 가족의 경우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복용하겠다는 심정을 이해한다”며, 펜벤다졸의 복용을 고려하는 환자들은 반드시 담당 주치의와 상담할 것을 권한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차도가 없는 말기 암 환자들에게 펜벤다졸의 사례가 한 줄기 희망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임상적으로 근거가 빈약한 약을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것은 어떤 후폭풍을 불러올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기존의 항암치료, 나아가 근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에 대한 불신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시연 기자/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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