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 당시와 비교해본 코로나 국면 속 한국 보건의료체계

이번 코로나 사태 속에서 한국의 방역은 외신들의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누적 확진자 수 200만 명, 누적 사망자 수 20만 명을 돌파하며 전 세계를 팬데믹(pandemic)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또한 초기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중국과 지리적ㆍ경제적으로 가까워서 우한 발생 초기부터 감염자가 꾸준히 발생하였으며 특히, 31번 환자 확진 이후 대구 신천지 신도를 중심으로 감염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대구경북 집단감염 사태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에 800명 이상 발생하기도 하던 확진자 수는 점차 감소해 4월 18일 이후로 한국의 일일확진자 수는 10명 내외의 수준을 유지하며 사태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음을 보이고 있다. 이런 한국의 놀라운 방역 성공은 ▲ 선진화된 의료시스템과 의료기술, 그리고 의료진의 헌신 ▲ 조기 검진과 조기 격리를 원활히 실시한 정부의 리더십 ▲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갖춘 한국 시민들의 협조와 잘 갖춰진 사회 인프라가 3박자를 이룬 덕분이다.
하지만 한국도 처음부터 효과적인 방역체계를 갖춘 국가는 아니었다. 2015년 있었던 메르스 사태를 떠올려보자. 5월 20일 최초 확진 이후 실질적 종식까지 69일이 걸린 메르스 사태는 확진자 186명, 사망자 39명을 발생시켰다. 한국과 중동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한국에게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발생한 국가라는 부끄러움을 안겼다. 감염병에 대한 대처가 미숙한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런 실패는 ▲ 감염 의심자와 일반인 간의 동선 분리 미흡, 격리병상을 비롯한 시설과 물자 부족, 감염관리와 방역 인력 부족 ▲ 질병관리본부의 메르스 검사 거부, 역학조사 및 동선추적 미흡, 격리조치 권한 부족 ▲ 가족 간병과 병문안이 잦은 좋지 않은 병원 이용문화, 대형병원 응급실 쏠림 현상 등 병원부터 정부, 시민사회까지 방역에 대한 인식에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 특히 병원의 대처에는 안타까운 점이 많았다.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대해 가장 잘 알고 행동할 책임이 있는 집단이 의사와 병원이지만, 메르스 사태 당시에는 병원이 감염확산의 큰 줄기로 기능하였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최초 감염되어 한국으로 병원체를 가져온 사람은 1번 환자 1명뿐이었지만 여러 병원에서 진료와 치료를 받으면서 슈퍼전파자들이 주변 환자, 의료진, 간병인, 문병객들에게 병원체를 전파하여 병원 내 감염이 계속 발생하였다. 메르스 의심환자가 일반환자와 같은 동선으로 응급실이나 외래진료를 가고 일반병실을 사용하는 등 격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이 감염병의 온상이 되는 비극이 초래된 것이다.
메르스 사태를 겪은 후 한국 사회는 메르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방역 체계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발표와 지적, 제언을 수용하였다. 그리고 2015년 9월 1일, 방역체계 개편대책을 발표하고 감염병 유입차단과 조기발견, 확산저지, 그리고 의료환경 개선과 대응관리체계 개편을 위한 48개 과제를 마련ㆍ추진하였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개선된 방역체계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본 기사에서는 이번 코로나 사태 속 보건의료계의 조치들을 메르스 사태와 반추하며 살펴보고자 한다.

■ 철저한 감염자 동선분리와 격리조치

우선, 감염자의 동선을 일반환자와 분리하기 위한 방법들을 강구하였다. 코로나는 메르스와 비슷하게 비말(침방울)과 접촉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감염자와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선별진료소는 감염의심환자 진단을 일반환자와 별도의 공간에 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로 감염자의 동선을 일반환자와 분리하는 역할을 하였다. 메르스 사태 당시 환자가 한 병원에서 감염된 이후 다른 병원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집단감염을 발생시키는 일이 잦았었는데 전국에 614개 설치된 선별진료소 덕분에 이를 방지할 수 있었다. 감염자와 비감염자의 접촉 자체를 차단할 수 있었으며 여러 병원을 순회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 정부의 “대규모 조기 검진, 조기 격리” 조치에도 선별진료소가 큰 역할을 하였다. 확진 검사 대상자의 범위를 넓게 잡고 이들에게 검사비까지 지원하며 검사를 유도하는 정부의 저인망식 방역 정책 기조에는 대규모 검사를 뒷받침할 빠른 검사 속도, 그리고 낮은 상호감염 가능성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선별진료소는 이런 조건을 맞추기 위해 드라이브 스루, 워킹 스루, 초스피드 워킹스루(도보진료)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였다. 피검사자 사이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야외에서 자연 바람을 이용해 실시간 환기하는 것이 특징인데 환기가 실시간으로 되고 사실상 서로 간의 격리가 유지되기 때문에 상호 감염위험을 낮추고 검진과 소독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 결과 유증상자 검사 사이마다 철저한 소독이 필요한 일반 선별진료소에 비해 검진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어 5~6분에 1명꼴의 빠른 검사를 실현할 수 있었다.
또한, 감염이 확인된 이후 치료를 할 때도 비감염자와의 격리를 위해 음압병상,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하였다. 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자 격리를 위한 음압병상 부족을 크게 체감한 정부는 음압병상 설치를 법을 통해 촉진하였다. 그 결과 현재는 국가와 시도 지정 음압병상과 대형병원에 설치된 음압병상까지 총 847병상이 마련되어있다. 하지만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감염자 폭증으로 8000여 명이 한 지역에서 발생하자 음압병실만으로는 감염자를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감염자가 집에서 자가격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족한 음압병상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생활치료센터이다. 생활치료센터는 평소에 연수원이나 기숙사, 리조트 등으로 활용되던 건물을 의료시설로 전용한 이 시설들로 코로나 경증 환자는 감기와 증상이 유사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은 자연치유가 된다는 점에 착안하였다. 전국에 총 16개 설치된 생활치료센터는 중증 환자는 음압병실로, 경증환자는 생활치료센터로 분리하여 제한된 의료자원을 경중에 따라 효과적으로 분배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 병원 유동인구 통제 및 각종 위생 조치들

메르스 사태 이전 한국의 병실은 환자와 의료진, 그리고 보호자, 간병인, 문병객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북적였다. 한국 병원들의 열악한 수익 구조상 모든 환자를 보살필 간호사 인력을 뽑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보호자가 환자 곁에서 간병하는 문화가 퍼져있었고, 또한 지인이 병원에 입원하면 문병을 가야 한다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당시 가족, 간병인, 문병객 메르스 확진확자는 71명으로 전체 확진환자의 38%에 달할 정도로 많아 한국의 이런 문화가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병원 내 병원체에 방문자가 감염되어 지역사회에 퍼뜨리거나 방문자가 병원체를 지니고 환자를 만나 병원 내 감염을 발생시킬 가능성 모두 크기 때문에 병원 유동인구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많은 병원에서 환자 치료 필수적이지 않은 면회객과 보호자의 출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면회는 전면 통제되었으며 보호자는 환자 1명당 1명으로 제한되었다. 일부 병원에서는 이로 인해 보호자와 병원 간에 마찰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병원들은 면역력이 약한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병원의 방침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일부 병원에서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시행을 통해 보호자의 출입을 줄이기도 하였다. 이 제도는 입원환자의 간병 부담을 감경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로 보호자나 간병인 없이 간호사에 의해 각종 입원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불필요한 인력의 출입을 줄일 수 있어 감염 관리를 용이하게 하였다. 또한, 위급하지 않은 외래환자는 내원을 미룰 것을 권유하고 특정 지역 방문 이력이 있거나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으면 진료나 수술이 어렵다는 것을 공지하며 환자들의 병원 방문을 자제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병원들은 혹시 모를 감염자의 방문에 대비하여 각종 통제조치들을 취하였다. 병원의 주출입구를 제외한 출입구들을 폐쇄하여 방문객의 동선을 단일화하고 모든 방문객에게 체온 측정과 마스크 착용, 손세정제 사용을 의무화하여 방역을 강화하였다. 또 일부 병원에서는 신원을 확인하고 DUR시스템을 활용해 출입국 정보를 열람하기도 했으며 몸 상태와 방문지역 이력 등을 설문지로 작성할 것을 요구하는 병원도 있었다.

이번 한국의 방역 성공에는 메르스 사태라는 예방접종이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에는 병원, 정부, 시민 모두 전염병에 대한 개념이 미흡해 방역 체계를 운용하는데 여러 실수가 있었다. 발원지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았을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이후 많은 조치를 취했고 부족했던 보건의료체계를 개선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코로나 방역의 모범국가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동이 매우 자유로운 시대이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 이번 코로나 방역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서 앞으로도 방역 선진국의 역량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이동훈 기자/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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