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다시 불붙은 ‘원격의료’ 논란

음성과 영상만으로 환자 진료 및 처방

진료의 안전성과 실효성에 대한 평가 불충분

충분한 근거 마련과 면밀한 검토가 우선되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의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면으로 이뤄지던 업무와 서비스는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비대면 택배 배달과 같은 비대면 형식으로 바뀌었다. 대면 진료를 원칙으로 하는 의료계도 변화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정부는 지난 2월 24일부터 전화 상담과 처방,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시행 초기인 3월까지는 전화상담·진료에 대한 비용 청구가 2만6520건에 그쳤지만 이후 청구 건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월 24일부터 5월 10일까지 전화상담·처방 건수는 26만2,121건, 진료금액은 33억7,438만원으로 집계됐다. 주로 고위험군에 속하는 만성질환자, 노인 등을 중심으로 전화 처방이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원격의료 도입 논란

현행 의료법 제34조에 따르면 현재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는 허용되지 않는다.

제34조 (원격의료)

①의료인(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만 해당한다)은 제33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이하 “원격의료”라 한다)를 할 수 있다.

②원격의료를 행하거나 받으려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시설과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③원격의료를 하는 자(이하 “원격지의사”라 한다)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여 진료하는 경우와 같은 책임을 진다.

④원격지의사의 원격의료에 따라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이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이하 “현지의사”라 한다)인 경우에는 그 의료행위에 대하여 원격지의사의 과실을 인정할 만한 명백한 근거가 없으면 환자에 대한 책임은 제3항에도 불구하고 현지의사에게 있는 것으로 본다.

 

원격의료의 도입은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꾸준히 논의되어 온 사안이다. 2002년, 2010년, 2014년, 2016년 4차례에 걸쳐 의료법 개정 논의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된 바 있다. 2019년 7월에도 강원도 춘천·원주를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여 격오지에 거주하는 당뇨·고혈압 환자 300명을 대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저조한 참여도로 인해 사업의 실효성을 입증하기 어려웠다. 9월부터 전국 17개 지방자치단체 41개 의료취약지에서 시행된 ‘원격의료지원 시범사업’ 또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사업이 실시되는 지자체 중 한 곳인 완주군의 경우 방문 간호사가 의료서비스를 수행하며 처방약을 전달해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의 원격의료 도입 의지

지난 6월 3일 임시국무회의를 통해 의결된 3차 추경안에는 원격의료 활성화와 관련된 예산도 포함됐다.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병원 내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면 접촉이 적은 진료환경을 마련하고 원격의료의 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먼저 지역의원과 보건소를 통해 정보통신기기를 활용한 건강관리 사업을 확대한다. 지역의원에 6만명을 진료하는 혁신형 건강플랫폼을 구축하는데 33억원을 투입하며 정보통신기술 활용 방문건강관리 사업을 시행하는 보건소를 현행 22개소에서 30개소로 늘리는데 23억원을 지원한다. 또한 모바일 헬스케어 사업 확대에 11억원을 투입한다. 5G 네트워크, 모니터링 장비를 활용해 진료하는 스마트병원 3곳을 구축하는데 60억원을 투입한다.

 

의사협회의 반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지난 달 18일 권고문을 통해 “정부가 코로나19 국가재난사태를 빌미로 소위 원격진료,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코로나19와 필수 일반진료에 매진하는 의사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 비열하고 파렴치한 배신행위”라고 비판했다. 또한 전화상담 처방의 전면 중단을 권고하며 의협의 의견에 적극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의협은 “권고 이후부터 일주일간 권고사항의 이행 정도를 평가한 뒤 전화상담과 처방의 완전한 중단, 나아가 비대면, 원격진료 저지를 위한 조치를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료계는 무엇을 우려하는가

의료계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상급병원 쏠림으로 인한 의원급 의료기관, 즉 일차 의료의 붕괴다. 원격의료를 도입할 자본이 부족한 개인 의원들이 상급병원에서 제공하는 원격의료와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기업과 대형병원의 개입으로 의료 민영화의 수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취약성, 의료법에 따라 ‘원격의료를 하는 자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여 진료하는 경우와 같은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환자의 건강상태는 시시각각 변하므로 초진으로 한 번 환자를 본 후에 원격으로 화면만 보고 진료를 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의사에게 대면진료와 같은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달 22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원격의료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을 비판했다. 정부가 제시하는 ‘비대면 진료’는 환자를 직접 보고, 소리를 듣고, 신체를 진찰해야 하는 의학의 기초이자 치료의 근간을 무시하는 행태라는 것이다. 의사들이 단순히 검사결과만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원격의료의 문제를 꼬집었다.

 

대한병원협회의 조건부 찬성

한편 6월 4일, 전체 의사 10만여 명 중 약 6만명의 소속 회원을 보유한 대한병원협회(회장 정영호, 이하 병협)가 비대면 진료, 즉 원격 의료에 조건부 찬성함을 밝혔다. 김연수 서울대병원장(병협 부회장)은 “세상은 이미 바뀌었다. 앞으로 영상을 통한 진료가 ‘노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서울대병원 문경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하며 원격 모니터링 등 비대면 진료를 시행한 결과 의료진과 환자 모두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그리고 서울시 보라매병원에 코로나19 환자 비대면 진료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의료진이 갈아입어야 하는 방호복과 환자 진료 시간, 비용 등을 아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병협은 비대면 방식의 의료 정책 마련에 대해 △초진환자 대면 진료 원칙 △적절한 대상 질환 선정 △급격한 환자 쏠림 현상 방지 △의료기관 종별 역할에 있어 차별 금지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 보장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또한 의료전문가 단체와 충분히 협의해야 함을 덧붙였다.

더불어 단계적인 시행과 조정을 통해 안정성 및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며 △국민과 환자의 건강 보장과 적정한 의료 제공 △의료기관 간의 과당 경쟁이나 과도한 환자 집중 방지 △분쟁 예방과 최소화 △기술·장비의 표준화와 안전성 획득 △의료 제공의 복잡성과 난이도를 고려한 수가 마련 등 5가지 사항을 제시했다.

 

계속되는 충돌

그러나 의협은 병협이 제시한 조건에 대해 “환자 쏠림 현상 방지, 의료기관 종별 역할 차별금지,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 보장이라는 전제는 양립하기 어려운 조건들”이라며 반박했다. 또한 “현재의 부실한 의료전달체계 하에서 원격의료를 시행한다면 환자들의 상급종합병원 집중현상을 제어하기 더욱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의협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은 “방역차원에서 비대면 진료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며 “그러나 코로나19가 끝난 이후엔 원격진료의 필요성과 효과, 문제점 등이 정부차원에서 철저히 검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의료 접근성이 좋은 국가는 원격진료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며 “결국 비대면 진료가 갖는 한계로 인해 원격진료 확대는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국 원격의료에서 의료 서비스의 제공자이자 책임자는 곧 의사이다. 현 의료체제에서 의사가 행한 진료와 결과에 대해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법적 책임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원격의료의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들에게 그 위험과 책임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원격의료는 또한 의사가 의료의 질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충족시킬 수 없다. 의료의 질에 필수적인 요소인 환자와 의사 간에 긴밀하고 지속적인 인간 관계의 유지, 시간, 사람, 공간적인 상관성과 연결에 대해서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시행이 본격화된다면 의료법의 개정부터 의사 수련 과정과 의과대학 교육 지침 수정까지 의료 분야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원격의료를 ‘선도형 경제’, ‘세계적인 흐름’으로 포장하여 성급하게 시행하기 보다는 충분한 비판적 검토와 면밀한 논의가 이뤄진 후 도입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오윤서 기자/순천향

<yoon5seo@s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