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젊은 의사들이 거리로 나서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최대 규모·최장 기간 집단행동… 국가고시 응시 문제 등 미해결 과제 남아
지난 8월 7일, 의약분업 이후 처음으로 젊은 의사들이 거리에 나왔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젊은 의사 단체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여의도광장에서 집회를 진행하며 각자 집단휴진과 수업 및 실습 거부의 형태로 단체행동을 개시했다. 이후 단체행동 과정에서 정부와 의사들 간에, 그리고 의사 사회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이 있었고 9월 4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정부·여당 및 보건복지부와의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단체행동은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본 기사에서는 왜 젊은 의사들이 거리로 나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전반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의대 정원 증원·공공의대 설립 추진한다는 정부, 반발하는 의사들
지난 7월 23일, 정부와 여당은 보건의료체계 강화를 위한 지역·공공의료 확충 방안을 발표하였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에 따르면 2006년 의대 정원이 3,058명으로 동결되면서 지역 간 의사 수 불균형, 특수분야 의사 수 부족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의대 정원을 10년간 400명 증원하여 총 4,000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로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지역의사선발전형’을 도입하여 지역 내 공공의료 및 중증·필수 의료기능 수행 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할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내용의 ‘지역 의사제’가 이 계획의 핵심이다. 또 필수분야(역학조사관, 감염내과 등) 인재를 양성하는 ‘공공의대’를 설립하여 기존의 서남대 의대 정원인 49명을 공공보건의료기관, 복지부, 시·도 등에서 10년간 의무복무할 인재로 양성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었다.
의협은 이러한 정부의 방안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가 발표한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과 더불어 기존에 논란이 있던 첩약 급여화, 원격의료 추진 등 4가지 정책을 ‘4대악 의료정책’으로 규정하며 비판하였다. 의협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나라 인구 천 명당 활동 의사 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OECD 평균 증가율보다 3배 이상 높은 반면에 인구의 연평균 증가율은 OECD보다 낮아, 2038년이 되면 우리나라 인구 천 명당 활동 의사 수는 OECD 평균을 넘어선다”고 주장했다. 또 “필수의료 분야나 지역의 의료 인력이 부족한 것은 의사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억누르고 쥐어짜기에만 급급한 보건의료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며 정부와 여당을 향해 “의사 인력 증원 관련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진정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의료계와 논의해 나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정부·여당은 지속적으로 법안 추진 의지를 내보였고, 의대생·전공의·개원의 등 각계의 의사들은 점점 더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몇 차례의 대화 시도에도 결국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는 8월 7일 오전 7시부터 24시간동안 응급실·분만실·투석실 등 필수유지 업무를 포함한 모든 전공의의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이하 의대협) 또한 전공의 집단휴진이 시작되는 7일부터 14일까지 1주일간 수업 및 실습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공의 집단휴진, 그리고 의대생들의 수업·실습 거부
8월 7일, 대전협의 주도로 ‘젊은 의사 단체행동’ 집회가 여의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집회에 참석한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정부가 의료계와의 충분한 논의 없이 의대 정원 증원안을 발표했다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박지현 대전협 회장은 “백년의 국민건강을 좌우하는 국가 의료 정책 결정에 정작 국민 건강을 최일선에서 책임지는 우리들의 목소리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 정부에게 우리는 최근의 의료 개악책들에 대한 전면적인 재논의를 촉구하는 바”라는 내용이 담긴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이후 1주일에 걸쳐 의대생들은 수업 및 실습 거부 단체행동을 진행하였다. 의대협은 SNS 등에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홍보자료를 배포하고 헌혈 캠페인, 비대면 봉사활동 등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선한 바람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덕분에 챌린지’를 비꼰 ‘덕분이라며 챌린지’가 수어를 모독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국농아인협회는 덕분이라며 챌린지가 ‘수어에 대한 모독’이라며 의대협의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이에 의대협은 공식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하였다.
두 차례의 전국의사총파업과 의대생들의 국시거부·동맹휴학
젊은 의사 단체행동과 1주일 간의 의대생 수업·실습거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자 결국 의협의 주도로 제1차 전국의사총파업이 진행되었다. 이 단체행동에는 젊은 의사 단체행동에 참여했던 전공의, 의대생뿐만 아니라 전임의, 개원의 등 더 다양한 계층의 의사들도 참여하였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집회 막판 결의 발언 순서에서 크레인에 올라 “독단적인 4대악 의료정책 철폐를 위한 우리의 요구사항을 정부가 끝내 묵살한다면 더욱 강력한 투쟁에 들어갈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오늘 이후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답변을 정부가 내놓지 않는다면 8월 26일, 27일, 28일 총 3일간에 걸쳐 제2차 전국의사총파업을 단행할 것”이라고 투쟁 지속 의지를 내보였다.
1차 전국의사총파업이 끝난 이후에도 정부·여당과 의사들 사이의 의견차는 좁아지지 않았다. 결국 21일부터 전공의들이 순차적으로 무기한 집단휴진에 돌입하였고, 최대집 회장이 예고한대로 26일부터 3일간 제2차 전국의사총파업에 돌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강행하고, 정부에서는 업무복귀명령을 내리는 등 의·정 간의 갈등이 점차 격해졌다. 전임의들도 집단 사직 행렬에 동참하는 등 젊은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파업에 동참하는 한편, 개원의들의 휴진률이 저조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1차 총파업은 휴가기간이 겹쳐 참여율이 높았지만 2차 총파업은 하루가 아닌 3일동안 진행되고 휴가기간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전공의 무기한 집단휴진에 발맞춰 의대협에서는 수업 및 실습 거부 무기한 연장과 의사 국가고시 집단 응시 거부를 결의하였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국가고시 응시자 대표들은 공동 성명서를 통해 “응시자 대표를 선두로 2,800여명(92.9%)의 학우들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접수를 취소했다”며 “우리는 국가고시를 거부함으로써 국민과 의료계 모두에 중대한 해악을 끼치는 의료 정책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단체행동 추진 과정이 절차적으로 비민주적이었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의대생 시험 거부 및 동맹 휴학의 이면을 고발합니다’라는 SNS 계정에서는 “공공의대 및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여 의대생의 시험 거부, 동맹 휴학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는 ‘실명투표’로 진행되었으며, 동의하지 않거나 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불이익의 압박’을 받고 있다”라며 문제를 제기하였다. 또한 “반대·불참하는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겠다는 압박이 많은 상황이다. 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오히려 당연하다는 반응”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조승현 의대협 회장은 “국시거부와 동맹휴학 등은 의대생 회원들이 의견을 내고 의대협에서 해당 건에 대한 투표를 실시해 가결됐기 때문에 진행된 것이다”라며 “순전히 자유의사로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외압이나 개인의 자유가 묵살된 경우는 없다”고 반박했다.
의·정 합의안 도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의사들
9월 4일, 더불어민주당과 의협이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에 관한 논의를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합의문에서 “국민의 건강과 보건의료제도의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지역의료 불균형, 필수의료 붕괴, 의학교육과 전공의 수련체계의 미비 등 우리 의료체계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과 코로나19 극복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정책협약을 체결하고 이행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며 코로나19가 안정화될 때까지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논의 중단 및 원점 재논의, 공공보건의료기관의 개선을 위한 예산 확보, 전공의 수련 환경 및 전임의 근로조건 개선 지원 등을 합의하였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이 합의가 전공의를 비롯한 젊은 의사들을 배제한 채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일부 전공의들이 예정된 서명 장소에 나타나 강하게 항의했고, 대전협·의대협 등으로 구성된 젊은 의사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의 발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합의는 진행중이나, 타결은 사실이 아니다. 파업 및 단체행동은 지속한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의협 대의원회도 정부와 합의한 최대집 회장을 강하게 비난하며 불신임안을 발의하였다.
정부와 의협의 합의로 집단행동의 명분이 희미해지면서 대전협과 의대협에서는 단체행동 지속 여부를 두고 밤샘 토론이 이어졌다. 의대협은 국가고시 추가접수기간인 9월 6일까지 무응답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사실상 국가고시 응시를 최종적으로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보건복지부는 7일 정례브리핑에서 의사 국가시험에 총 응시대상 3,172명 중 446명(14%)이 응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전공의들은 집단행동 중단 여부를 두고 의견이 크게 갈렸다. 대전협 비대위 측은 집단휴진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할 것을 언급했지만, 다수의 전공의들이 이에 반대하였다. 특히 국가고시 응시를 최종적으로 거부하기로 한 의대생들이 구제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집단행동을 지속한다고 주장한 전공의가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7일 대전협 집행부가 총사퇴를 하고 새롭게 구성된 대전협 비대위가 집단휴진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결국 전공의들이 하나둘 업무 복귀를 했다.
전공의 복귀 이후에도 집단행동을 유지하던 의대생들은 결국 단체행동을 중단하였다. 13일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본과 4학년 국시 응시자 대표들은 공동 성명서를 통해 단체행동을 잠정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다음날인 14일 의대협은 보건의료정책 상설감시기구 출범과 함께 단체행동 중단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이에 상당수 의대생들이 반발하기도 했으나, 결국 예과 1학년부터 본과 3학년까지 학생들은 휴학계를 철회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꺼지지 않은 불씨
집단행동은 일단락되었으나,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사태가 완전히 종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본과 4학년 학생들의 국가고시 응시 문제이다. 절대 다수의 본과 4학년 학생들이 국가고시를 응시하지 않으면서 내년 인턴 수급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의사들은 내년도에 맞닥뜨릴 의료 대란을 우려하면서 정부에 본과 4학년 학생들의 국가고시 응시를 허용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국가고시 추가 응시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추가 접수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의협과 대전협이 단체행동을 중단하면서 사퇴 또는 탄핵 위기에 처한 것과 마찬가지로 의대협 회장단 또한 탄핵 기로에 서 있다. 탄핵 소추인단은 의사 국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체행동 중단을 임의로 결정하고 대의원과 본과 4학년 대표단을 배제한 채 단체행동 중단을 결정했다는 것을 이유로 의대협 회장단의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탄핵안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다.
새롭게 대전협 회장으로 선출된 한재민 회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내년의 인턴 수급문제가 전공의 수련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이 또한 합의문에 명시된 수련환경개선에 대한 약속에 반하는 것이므로 적극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단체행동 재개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그러나 의사들에 대한 국민 여론이 싸늘하고 집단휴진 기간 중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단체행동 자체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이 형성된 만큼 다시 단체행동을 진행할 경우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김태희 기자/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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