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정부는 의대 정원 증가와 공공의대 신설이라는 정책을 제시하였고, 의사들은 다양한 근거를 들어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결국 단체행동을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제시한 방안에는 신규 배출된 의사들이 의무적으로 지역·공공의료에 일정 기간 종사해야 한다는 강제성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정작 의료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는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으로 의료서비스의 공적 책임과 공공의료기관의 필요성을 체감한 국민들에게 의사들은 우리나라의 지역 간 의료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의료 전문가로서 전국 각지에서 지역·공공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공공병원이 당면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보다 더 나은 방안이 제시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단체행동 기간 동안 의사들은 지역 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 문제를 이슈화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국민들에게 공공병원 설립의 필요성을 피력하지는 않았다.
2019년 국립중앙의료원이 실시한 「공공보건의료 경험과 국립중앙의료원의 역할에 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공공의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다수의 응답자가 ‘저소득층,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진료’(68.7%), ‘감염병 유행, 재난 등 비상시를 대비한 인력과 시설 구비’(66.1%), ‘질병 예방과 건강증진에 대한 보건정책’(65.8%), ‘국가 보건의료사업 지원(65.6%)’, ‘노인, 치매 등 돌봄과 의료’(65.0%) 등 다양하게 응답하여, 공공의료의 역할에 대해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보건소나 국·공립병원 등 공공의료를 주로 이용하는 국민 비율은 5.4%로 매우 낮았으며, 공공의료기관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대다수는 ‘예방 접종’(37.9%), ‘검사 및 건강검진’(32.5%)에 이용 사유가 국한되어 있는 등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을 ‘민간영역이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부분’을 보완하는 잔여적 역할로 보는 인식이 높았다. 또한 이들이 공공의료를 선택하는 이유로는 ‘의료비 절감’(43.0%), ‘거리 접근성’(21.6%) 등 민간부문의 의료에서 나타나는 접근성과 진료비 문제에 대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역할을 해주어야 할 공공병원이 실제로는 극히 제한된 영역에서만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1. 2018년 OECD 비교 국가 대비 공공의료기관 수 비중 (2019 공공보건의료 통계집, 국립중앙의료원)
그림 2. 2018년 OECD 비교 국가 대비 공공의료기관 병산 수 비중 (2019 공공보건의료 통계집, 국립중앙의료원)
적은 숫자로 간신히 사회를 지탱하는 공공병원
공공병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에는 지나치게 낮은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비중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의료 서비스 전반에서 공공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주요국들과 비교해도 한참 모자라는 수준이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전국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은 5.7%에 불과하다(그림 1). 이는 일본의 18.3%, 미국의 24.8%보다도 적은 비중이며, OECD 평균인 52.4%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공공의료기관의 병상 수 역시 2018년 기준 우리나라는 10.2%에 불과하다(그림 2). 이 역시 일본, 미국보다도 적은 비중이며 OECD 평균과의 격차도 상당하다.
그 뿐만 아니라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공공병원들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전국 40개의 지역거점공공병원 중 500병상 이상의 규모를 가진 병원은 3곳(서울의료원, 부산의료원, 청주의료원)에 불과하며 응급실이나 수술실, 중환자실, 신생아실, 분만실, 격리병실 등이 없는 곳도 상당수이다. 이 때문에 지역에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중증질환자의 경우 민간영역의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적은 규모이지만 우리나라의 공공병원들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약 80%의 코로나19 환자들을 진료하는 등 의료 고유의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병원들이 보다 수월하게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공병원의 수를 늘리고 각 병원의 병상 수도 늘리는 등 인프라 확충이 절실하다. 그러나 공공병상 확충은 쉽게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만성 적자가 심하다’, ‘경영 효율성이 낮다’는 등의 경제적 이유를 들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3. 전국 지역거점공공병원 허가병상수 (지역거점공공병원 알리미, 보건복지부)
그림 4. 2015~2019년 지역거점공공병원 연도별 경영실적 (지역거점공공병원 알리미, 보건복지부)
적자 때문에 공공병상 확충이 어렵다?
공공병원들은 민간병원과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구조에 놓여있다. 경영 수지를 맞추기 위해 중증외상센터나 감염병센터 등 수익이 나지 않지만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줄일 수 있는 민간병원과 달리, 공공병원은 필수·공공의료 서비스를 외면할 수 없다. 또 과잉진료나 비급여진료를 하지 않고 적정진료를 위해 표준진료지침(CP)을 준수해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의 공공병원들은 지속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이를 의료 외적인 수익으로 간신히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그림 4).
그런데 공공병원이 다양한 공익적 사업들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의 성과를 평가할 때에는 주로 경제적 지표가 활용된다. 대표적으로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몇 년째 설립에 난항을 겪고 있는 대전의료원과 서부산의료원이 있다. 지역에서는 이미 수 년 전부터 지방의료원이 없는 대전과 부산 서부권에 공공병원 설립을 추진해왔으나, 기획재정부에서 주관하는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이 기준치를 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좌초되어 있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국민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공공병원 설립 등 공공의료체계 구축 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아직 진전이 있는 상태는 아니다.
의제 전환이 필요하다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대를 세우고 지역 의사제를 실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공의대 졸업생들이 일할 공공병원들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함과 동시에 그 수를 더욱 늘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공병원들은 적은 수로 대한민국의 공공의료를 책임지면서도 경제적으로 손해를 내서는 안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물론 공공병원 확충 또한 유일한 해법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지역·공공의료를 되살리려면 많은 조치들이 필요할 것이다. 공공병원이 보다 양질의 의료를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도 있고, 지역 내에서 공공의료체계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특히 2021년 예산안에 공공의료 관련 예산이 지나치게 적게 배정되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분을 가장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할 집단은 바로 의사들이어야 한다. 지역 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이라는 정책에 한계가 있다면 그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대안이 무엇인지 제안할 수 있어야 의사들의 목소리가 대중에게 소구력을 갖게 될 것이다.
김태희 기자/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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