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의사들의 프로페셔널리즘

2021년 기자소양교육 특집 기사

의대생신문 기자와 메디게이트 인턴기자가 함께하는 기자소양교육이 2월 16일에 줌으로 진행되었다. 연사 네 분을 초청하여 학생 기자들이 원하는 주제에 대한 특강과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다.
3교시 : 현대사회에서 의사들의 프로페셔널리즘 –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님

메디컬 프로페셔널리즘

메디컬 프로페셔널리즘이란 의사에 대한 공적 신뢰를 뒷받침해주는 가치, 품행, 관계 등의 집합체이다. 이는 캐나다에서 처음 고안된 임의적인 개념이지만 의료가 단순한 치료 행위를 넘어서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고 선도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메디컬 프로페셔널리즘은 개인적 차원의 가치와 의무, 집단적 차원의 임상적 자율권, 직무 윤리와 자율 규제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 임상적 자율권이란 의사가 오로지 자기 판단에 의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경영주의 지나친 개입으로 과도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를 시행하거나 반대로 국가보험의 보장 범위가 충분하지 못해 검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 임상적 자율권이 침해된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통제적 단일 보험 제도와 거대 자본의 개입, 의료 기관의 상업화를 위시로 한 현대 의료의 특성으로 임상적 자율권에 대한 위협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자율 규제는 내부 결속, 환자의 안전, 사회의 이득을 위해 의료계에 이상 행동,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있을 경우 의사단체 내부에서 자정하는 기제이다. 사회적 신뢰를 획득하고 의료의 책무성을 제고하며 불필요한 재판 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낭비를 방지하는 것이 자율규제의 궁극적인 지향이다. 우리나라에서 의료행위에 대한 규제는 법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자율 규제로서의 메디컬 프로페셔널리즘은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개인적 차원의 전문직업성은 유교적인 우리나라의 환경과 다년간의 교육으로 대부분 확립되지만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서양의학 고유의 역사를 공유하지 못하므로 집단적 차원의 전문직업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자체 면허관리기구의 필요성

메디컬 프로페셔널리즘을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면허관리기구가 필요하다. 면허 관리는 첫째로 법이 아닌 전문집단이 세운 의료표준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둘째로 의사이익단체와는 독립적인 기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의사단체로는 British Medical Association(이하 BMA)와 General Medical Council(이하 GMC)가 있다. BMA는 임의 단체로서 가입이 자율이며 의사의 권익을 보호하고 고소, 고발에 대한 법적 자문을 하는 단체이고 GMC는 법정단체로서 가입이 의무이고 환자와 사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면허를 관리하고 자체적인 심의 기능도 하는 자율규제단체이다. 각각 의사와 환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이해가 상충되므로 두 단체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이원화된 형태의 의사단체를 많이 볼 수 있다. BMA와 같이 조합의 성격을 띠는 Trade Association과 GMC와 같이 자율 규제를 담당하고 면허를 관리하는 Regulator가 이원화의 두 축을 이룬다.

면허 기구의 역할로는 면허의 등록과 발부를 관장하고, 환자와 사회의 소원을 수리하며, 의료 표준을 설정해 의료 과오에 대처하는 것 등이 있다. 의료 표준은 의사들의 행동규범으로서 좋은 의료를 장려하고 나쁜 의료를 방지하며 표준 미달의 의료에 대해서는 재교육, 경고, 벌금, 면허 정지, 면허 박탈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는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대표적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의료법상 존재하는 협회로 표면적으로는 자율규제 단체이지만 조합의 성격도 띠므로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독립적인 면허관리기구는 부재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면허관리를 위해 대한의사면허관리원을 산하기구로 출범하였고 일정 기간 지원하며 안정화되면 완전한 독립적 기구로의 분리를 계획하고 있다.

메디컬 프로페셔널리즘과 의사 파업

작년 공공의대 설립으로 촉발된 의사 파업은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려 국내 최대 이슈 중 하나였다. 지금껏 의사 양성은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의사를 공공재 취급하고 업무개시 행정명령을 내리는 정부의 독재적인 행태에 전국의 의료인들이 분노하였다. 나아가 소모적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 의료 과실에 대한 형사 입건 등 의료 선진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의료독재 정책들도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갈등은 극에 치달았다.

의료에 대한 이데올로기 충돌이 발생하고 임상적 자율권과 자율 규제를 해치는 정책들을 양산하는 가장 큰 이유에는 우리나라의 메디컬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이해 부족이 있다. 일제 식민 고등교육에 의해 도입된 우리나라의 근현대 서양의학은 전문직의 역사, 문화, 사회적 요소가 생략된 채 교육되었고 이를 일제 식민 통치 문화가 대체하였다. 오로지 학문적인 요소들만 주입한 결과 전문직의 품위와 전문직업성의 형성 실패로 이어졌다. 이러한 일본식 서양의학교육의 후유증으로 의사 전문 단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개념과 자율적 규제와 사회계약 개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의사는 파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의료는 육체 노동, 감정 노동, 지식 노동의 집합체로 의사도 노동자로서 파업할 권리가 있다. 다만 의료는 사회의 기반을 유지하는 서비스로 파업 기간에도 응급의료, 암수술, 등 필수 의료를 제공하고 사전 공지를 통해 공중의 파업 대비를 독려해야 한다. 유럽 연합은 의사들의 일반적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준용하여 파업을 인정하되 사전 공지 의무를 지우고 일부 국가에서는 절차적 규제를 두고 의사 파업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국제사회에서도 의사 파업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수많은 성공적인 사례들이 존재한다. 파업의 주된 원인으로 의료 정책, 근로 환경, 경제적 보상, 의료인 폭행, 특진비 폐지 등이 있다. 의사 파업이 안전한가에 대한 답은 과거 사례를 통해 찾을 수 있다. 2017년 10일 간의 추석 연휴 동안에도 사망률이 유의하게 증가하지 않았고 의사 파업 기간 동안 사망률이 감소한 역설적인 현상은 해외 여러 논문에 의해 보고된 바 있다.

이처럼 의사 파업은 부당한 정치적 공작에 의한 의료정책에 대해 저항하고 메디컬 프로페셔널리즘을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이다. 따라서 의사 파업과 군인의 전투지 이탈은 결코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정성현/고려
flyguerilla@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