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방치된 ‘곪은 상처’, PA 그리고 불법 의료

서울대병원의 PA 양성화 선언,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불법 PA 논란

 

지난 5월 17일, 서울대학교병원(이하 서울대병원)이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인력)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김연수 서울대병원장이 PA 양성화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진 지 7개월만이다. 서울대병원은 기존에 부정적인 인상을 주던 ‘PA’라는 명칭을 CPN(Clinical Practice Nurse, 임상전담간호사)로 변경하고, ‘임상전담간호사(CPN) 운영위원회 규정’을 마련하여 적절한 교육과정과 보상체계를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은 18일 성명서를 통해 “사실상 본질적 해결책 없는 의사 부족으로 인한 의료기관들의 불법행위와 간호사, 의료기사 등에 대한 불법행위 강요를 공식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소속된 의료연대본부에서도 20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노동조합은 병원 측에 불법의료 지시를 항의하며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병원은 지시한 적 없다며 발뺌했고, 불법의료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PA 당사자는커녕 노동조합과조차 협의하지 않고 PA 양성화를 추진하는 서울대병원을 비판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역시 같은 날 “무면허 보조인력의 무분별한 운용이 전공의들이 당연히 가져야 할 수련 교육의 기회를 앗아가고 있어, 일부 전공의는 전문영역에 떳떳하지 못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며 PA 제도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했다.

임상실습 경험이 있는 의대생이라면 병원에서 너무나도 쉽게 PA를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실제로 PA가 전공의와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일을 하기 때문에 환자들뿐 아니라 실습 학생들조차 PA와 전공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연차가 쌓인 PA는 저년차 전공의보다 오히려 각종 술기를 훨씬 수월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비슷한 일을 하고, 심지어 일을 잘하더라도 이들이 하는 업무는 대부분 ‘불법’이다. PA는 누구이며, 왜 불법 의료행위를 하는 것일까? 모두가 불법임을 알지만, 왜 쉽게 근절할 수 없는 것일까?

 

PA는 누구인가

PA는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의사가 아닌 의료인력이다. 주로 간호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최근에는 응급구조사나 임상병리사가 PA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전공의 수급이 불안정한 내과, 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흉부외과에 압도적으로 많이 분포한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제출된 ‘국립대병원 의료지원인력(PA) 현황’에 따르면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에서만 1,020명의 PA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다.

처음부터 PA가 모든 병원에 공공연하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PA 제도가 시작된 시기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약 10~15년 전부터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몇몇 병원들이 일부 간호사에게 난이도가 높지 않은 의사 업무를 조금씩 시키던 것이 지금에 이르러 이렇게 확대되었다. 특히 2016년 제정된 전공의 특별법에 따라 전공의의 근무시간이 주 80시간으로 제한되면서 병원에서는 전공의의 업무를 대신할 인력으로 PA를 대거 고용하였고 그 결과 PA의 수와 업무 범위가 급격히 확대되었다. 작년 여름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 병원이 비교적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이유도 PA들이 그들의 일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직역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할당된 업무나 체계도 없다. 간단하게는 처방 대행, 동의서 받기부터 시술이나 수술 보조까지 매우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의료법 제27조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PA가 하는 의사 업무는 간호사의 면허범위 밖의 업무이기 때문에 엄연히 불법에 해당한다. 또한 당직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등 정당한 급여를 받지도 못하고, 전공의 수급 상황이나 연차에 따라 PA에서 병동 간호사로 쉽게 부서 변경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의사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도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고, 언제 면허를 내놓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항상 가진 채 근무한다.

 

불법 의료행위 아래 놓인 복잡한 역학관계

대한병원의사협의회에서는 PA의 불법 의료행위 근절을 위해 2018년부터 PA 불법의료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에서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76%에 달하는 병동 간호사들도 PA와 마찬가지로 의사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 최근 인천과 광주의 척추 전문병원에서 대리수술을 한 정황이 드러났는데, 이 역시 의사가 아닌 병원 관계자가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 요컨대 불법 의료행위는 PA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결국 불법의료의 근절을 위해서는 PA가 아니라 의사의 업무가 의사가 아닌 이들에게 전가되는 현상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불법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그중 가장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의사 수의 부족이다. 의사 집단에게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지 모르나, 보건의료노조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병원에서 의사 업무를 간호사에게 전가하는 이유로 모든 그룹의 응답자들이 ‘의사 수가 부족하므로’를 가장 많이 꼽았다. 실제로 대형병원의 모든 전공의들은 주 80시간이라는 근무시간 상한선이 무색할 정도로 과로하고 있다. 이렇게 전공의들을 과로시키고도 의사의 업무를 다 처리하지 못해 PA를 대거 고용하는 현실을 보면 적어도 종합병원급 이상의 병원에서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명백해 보인다.

그러나 PA가 딱 의사가 부족한 만큼만 고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은 추가적으로 의료 인력을 확충해야 할 경우 의사보다는 오히려 PA를 더 고용하려 한다. PA의 임금이 일반적으로 의사의 임금보다 낮기 때문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PA는 점점 많이 고용되고, 의사들은 많아진 PA에게 점점 더 많은 업무를 전가하게 된다. 병원들이 지속적으로 병상 수를 늘리는 것도 PA를 고용하는 하나의 유인이 된다. 병상이 늘어날수록 병원에서 수행되어야 할 업무도 비례해서 늘어나는데, 병원은 이 업무를 의사 대신 PA를 통해 쉽게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이렇게 병원이 몸집을 키우는 동안 그에 따른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지 않았음에도 병원에게 책임을 묻는 이들은 많지 않다.

업무범위가 모호하다는 것도 의사들의 업무가 간호사에게 전가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의료법 상 의사의 업무는 ‘의료와 보건지도’로 되어 있고,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업무 내용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어디까지가 의사의 업무이고 어디까지가 간호사의 업무인지 의료 현장에서조차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이렇게 모호한 업무범위는 의사의 업무가 병원 내 위계에 따라 의사가 아닌 이들에게 전가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러나 명확한 업무 분장이 불법의료 문제 해결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의사의 서명이 필요한, 즉 명백히 의사의 업무인 것조차 PA에게 전가하고, 심지어 논문 준비 작업과 같이 임상 업무와 무관한 일을 PA에게 시키는 병원도 있기 때문이다.

 

불법의료, 무엇이 문제인가

이렇게 의사의 업무가 다른 의료인력에게 전가될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환자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PA와 간호사들이 하는 의사 업무는 간호대학에서 배우지 않는다.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낯선 업무를 시키면서도 기초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PA의 경우 별도의 수련 과정이 존재하지도 않고, 병동 간호사처럼 프리셉터(preceptor, 신규 간호사가 부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간호 실무를 교육하는 선배 간호사) 제도가 갖춰져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치료와 안전에 직결된 업무를 권한이 없는 PA와 간호사가 할 경우 사고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PA가 환자를 자주 볼수록 주치의는 환자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의 수술 부위를 PA가 드레싱하고 상처의 사진을 의사에게 보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미흡한 환자 파악뿐 아니라 환자의 의료정보 유출 문제와 이어질 위험도 있다.

또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문제도 있다. 의료인의 면허에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져야 할 의무도 수반된다. 바꿔 말하면 PA나 간호사들은 책임질 수 없는 업무를 하도록 내몰리는 것이다. 특히 PA는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불법 인력이기 때문에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조차 없다. 실제 판례에서 PA가 의사 업무를 대신했을 때 불법 의료행위를 지시한 병원이나 의사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행위 당사자인 PA에게만 법적 처벌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보건의료노조는 ‘대리 처방, 동의서, 처치·시술, 수술, 조제 및 복약설명’을 의료현장의 5대 불법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보건복지부에 실태조사와 근절 방안 마련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다.

 

불법의료 근절을 둘러싼 동상이몽

이렇게 불법 의료행위가 만연한 의료 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각계에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현재 시행중인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더 활성화시키고 불법 PA의 자리에 의사가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병원들이 이러한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비용적인 부분이 문제가 되며, 결국 병원의 의사 인력의 부재의 근본적인 원인은 낮은 의료 수가인 만큼 정부의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수가 인상으로 병원의 수익이 늘어난다고 해서 병원이 인력을 굳이 더 고용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 수익이 병상 확대로 이어질 경우 대형병원이 환자들을 더 많이 흡수하면서 의료진의 업무 부담이 더 심해지고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될 위험도 있다.

보건의료노조와 의료연대본부에서는 ‘의사 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병원이 부족한 의사의 업무를 상대적으로 값싼 인력인 PA로 채우려 하고, 이 때문에 PA에게 의사 업무가 전가되어 불법 의료에 내몰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년 9·4 의정합의를 통해 결성된 의정협의체에서 의사 수와 관련한 논의는 정부와 의협이 1대1로 논의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의사 수 확대를 위해서는 의사들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보건의료노조에서는 이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전 의료계에 간담회를 제안한 바 있다. 특히 이전에 의협과 대한병원협회, 대한간호협회 등 이해당사자들이 모인 협의체에서는 충분히 생산적인 결론이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와 의료 이용자들까지 포함한 전국민적 공론화를 제안하였다. 하지만 의사들은 다른 직역과의 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6월 3일 의협은 ‘의료기관 내 무면허 의료행위 근절 특별위원회(PA 특위)’를 구성하여 의료행위별 업무 범위 기준 설정 및 무면허 의료행위의 의료자문을 하는 역할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업무범위를 논의하는 데에 의사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논의 주체를 의사로만 국한시키는 것은 민주적인 절차가 아니다. 또한 정부와의 소통 창구가 이원화될 경우 혼란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

그동안 이 문제에 정부는 항상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PA 자체가 불법 인력이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었기 때문에 PA는 쉽게 확대될 수 있었고,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편 서울대병원이 PA 합법화 추진과 관련한 규정을 7월에 공개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정부도 이른 시일 내로 PA 관련 공청회를 개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루하루 위태롭게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의료계를 정상화하는 데에 첫 걸음을 뗄 수 있을지, 예비 의료인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태희 기자 /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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