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노벨생리의학상: 감각 원리가 새 치료법의 길을 열다

(좌) 데이비드 줄리어스 (우) 아뎀 파타푸티언

(출처: 스웨덴 노벨위원회 홈페이지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 Niklas Elmehed © Nobel Prize Outreach, 접속일자 2021.11.02.)

지난 4일,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노벨위원회는 온도와 촉각 수용체를 발견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의 생리학 교수 데이비드 줄리어스와 스크립스연구소의 신경과학 교수 아뎀 파타푸티언에게 202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하였다. 위원회는 그들이 수용체를 발견함으로써 온도와 압력을 최초로 분자 수준에서 설명하였다는 점에서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여 이를 수상 이유로 삼았다.

 

감각은 크게 특수감각과 일반감각으로 나눌 수 있다. 시각, 후각, 미각, 청각을 아우르는 특수감각은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온도와 통증, 접촉과 압력을 포함하는 일반감각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어 왔다. 연구성과는 저조하나 일반감각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오래되었다. 데카르트가 17세기에 쓴 저서에는 불의 열이 뇌에 신호를 전달하는 과정을 상상해 나타낸 그림이 있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열 자극의 전달 경로를 상상한 그림이다.

(출처: 노벨 위원회 홈페이지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21/summary/, 접속일자 2021.11.02)

 

1944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인 조지프 얼랭어와 허버트 개서는 일반감각에 대한 꾸준한 연구 끝에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는 감각 신경섬유를 발견한 바가 있다. 연구를 통해 데카르트의 그림은 감각기에서 뇌까지 신경이 연결한다는 점에서 사실과 부합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신경섬유는 전기적 신호를 전달한다. 온도와 촉각에 대한 자극은 어떻게 전기적인 신호로 전환되는 것일까.

 

천연물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줄리어스 교수는 열에 반응하는 감각기를 찾아내기 위하여 고추의 화합물인 캡사이신을 사용하였다. 캡사이신은 열감을 유발하는 동시에 통증 감각을 일으키는 신경 세포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줄리어스 교수는 통증, 열, 접촉에 반응하는 감각뉴런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의 DNA를 수백만 개로 절단하였다. 그 다음으로 HEK293이라는 특정 세포에 각각의 형질을 주입시켜 캡사이신과 반응시켰다. 연구 끝에 그는 세포를 캡사이신에 민감하게 만드는 유전자를 발견하였다. 통증 인식에 관여하는 감각뉴런에서 해당 분자가 발현된다는 추가적인 검증을 통해, 찾아낸 유전자가 단순히 캡사이신과 반응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유전자는 새로운 이온 채널 단백질을 암호화한 것이며 그 수용체를 TRPV1이라고 명명했다. 줄리어스 교수는 TPRV1이 고통으로 인식되는 온도에 이를 때 활성화되는 열 감지 수용체라고 밝혔다. 이후 줄리어스 교수와 파타푸티안 교수는 멘톨이라는 화학물질을 활용하여 저온에서 활성화되는 수용체 등 온도에 관한 수용체를 더 발견하였다.

(출처: 노벨 위원회 홈페이지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21/summary/, 접속일자 2021.11.02)

 

줄리어스 교수는 “아스피린이나 모르핀 등 많은 약들이 천연물에서 발견되거나 파생됐다”며 천연물로부터의 의학연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줄리어스 교수의 연구의 영향으로, 통증 경로에 관여하는 TRPV1을 차단하는 진통제에 대한 연구가 진행 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인류가 사용하는 진통제 중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진 아편계 약물이 중독성에 대한 부작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받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줄리어스 교수는 연구가 관절염, 천식 및 만성 통증과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압력과 접촉을 비롯한 기계적 자극은 신경계에서 어떻게 처리할까. 박테리아의 기계적 자극 수용체는 발견되었지만 척추동물의 기계적 자극에 대한 인지 기제는 여태 밝혀진 바가 없었다. 파타푸티언 교수는 노벨재단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에서는 평소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도 큰 관심을 받습니다. 익숙한 무언가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촉각 연구가 그런 분야 중 하나입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피부를 누르면 압력을 느끼는 현상을 연구하며 촉감을 탐지하는 수용체를 발견하기에 나섰다. 파타푸티언 교수는 마이크로피펫으로 찔렀을 때 전기신호를 방출하는 세포를 찾는 것으로 실험을 시작하였다. 그는 관련 유전자로 추정되는 72개의 유전자를 찾아내어 각각을 비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캡사이신과 ‘반응하는’ 유전자를 찾던 줄리어스 교수의 실험과는 달리, 파타푸티안 교수는 찌르더라도 ‘반응이 없는’ 세포를 찾아냈다.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은 세포에서 비활성화된 유전자를 발견한 결과, 기계적인 자극을 감지하는 PIEZO1과 위치와 자세를 감지하는 PIEZO2라는 수용체를 찾았다. 연구진들은 PIEZO1과 PIEZO2 경로가 혈압과 호흡, 방광 조절과 같은 생리학적 과정을 조절하는 것도 발견하였다.

(출처: 노벨 위원회 홈페이지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21/summary/, 접속일자 2021.11.02)

 

파타푸티언 교수는 “세포가 압력을 탐지하도록 하는 수용체를 찾은 것은 촉각 관련 연구에 있어 아주 새로운 길이 열린 것과 같았다. 이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경로였다”고 말했다. 이번 발견을 통해 기계적 자극에 의존하는 생리기능에서 발생하는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스마트폰의 햅틱 기술 분야에서도 PIEZO2의 생체 원리가 잠재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원회는 “수상자들은 우리 감각과 환경 사이 복잡한 상호 작용에 대한 이해에 중요하면서도 누락되었던 연결고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그들이 발견한 지식은 만성 통증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질병에 대한 치료법 개발에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도윤 기자/동국

<doyy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