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교과서에 나오는 ‘허준’이라는 인물이 쓴 《동의보감》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전통 의학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방송 프로그램이나 광고에서는 종종 동의보감을 근거로 제품의 효능을 소개하거나 치료효과를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지금의 나로서는 한의학에 대해 자부심보다 의문점이 더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이자 기생충 학자인 투유유 교수는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이다. 투유유 교수는 중국 전통의서인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에 언급된 개똥쑥에서 항말라리아 효과가 있는 ‘아르테미시닌’이라는 물질을 발견했다. 이렇게 발견한 아르테미시닌은 매년 200만 명 이상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말라리아의 발병 초기 단계부터 기생충을 빠르게 박멸하여 개발도상국에서 말라리아의 피해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투유유 교수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는 중국이 중의학으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것은 정부의 전폭적인 중의학 지원으로 가능했다며, 한의학의 과학화를 위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쟁은 과거부터 계속 이어져왔다. 대한의사협회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면허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며, 국민 건강에 직접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의사들은 의사 측의 방해와 복지당국의 책임 회피로 의료인인 한의사가 진단의 객관화를 위해 당연히 사용해야 하는 진단기기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되풀이되어 왔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중국의 노벨의학상 수상을 근거로 한의학에 의료기기를 허용해야한다는 주장에는 몇 가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첫째, 노벨생리의학상은 중국전통의학이 아닌 현대의학에 대해 주어진 상이다. 노벨위원회는 노벨의학상 수상자 발표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전통의학에 상을 준 게 아니라는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전통의학에서 영감을 얻은 의학 연구를 통해 새로운 약을 개발해 전 세계가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에 대해 상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통의학이 영감을 주는 훌륭한 방법인 것은 맞으나 모든 과정은 현대적인 과정을 거쳐야만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고도 했다. 즉, 긴 시간동안 축적되어온 정보의 보고라는 점에서 전통의학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만 객관적 검증을 거부한 채로는 그 성과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의사에게 침 사용을 허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의료기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결과를 판독하는 것은 단지 영상의학에 관련된 강의 몇 개를 듣고, 실습을 몇 번 했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병원에서도 영상의학과가 별도로 존재할 정도로 영상 결과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책임감 있는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인턴, 전공의, 전문의 과정을 거치는 만큼의 긴 시간의 수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안덕선 교수는 2015년 중앙일보에서 “전문직 면허는 직무의 안전성을 위해 고도의 교육과 기술을 습득한 사람에 한해 독점적으로 주어진다. 그것은 소비자와 사회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정부와 의학이 한의학에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셋째,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한의학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투유유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전통의학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현대의학적 방법과 원리로 개발된 말라리아 약”이라며 그러므로 이를 바탕으로 한의학을 육성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과장, 왜곡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의학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환자의 건강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잘못된 접근이라는 것이다. 의협은 “진정 한의학의 발전을 위한다면 현대의학처럼 처방전을 발행하고 처방 조제내역을 공개하며, 한약의 표준화를 위한 제도개선에 한의협이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든, 한의사든 같은 의료인으로서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시행하는 것이다. 담석 환자가 한방병원에 가서 한약과 침을 통해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의 진료일지, 병원에 가서 빠르게 담석 제거술을 통해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의 진료일지는 한의사와 의사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우리 모두 과연 무엇이 환자를 위하는 길일지 생각해봐야할 때가 아닐까?
박유진 기자/순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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