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술이든 치료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해”
“한국, 원격의료를 경험해볼 기회가 적었다”
-김치원 카카오벤처스 상무/서울와이즈재활요양병원장님
수많은 기술들이 홍수처럼 생겨나고 있는 세상이다. 그 중에서도 일부의 기술들만이 삶 속에서 활용된다. 어떻게 하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기술들 중에서 사회에 정말 가치가 있는 것들을 선별할 수 있는가? 디지털 헬스케어처럼 새로운 기술들을 의료와 접목시킬 때, 그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김치원 연사님은 서울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카카오벤처스 상무로 일하고 계신다. 스타트업에서 투자하는 일을 하고 계시고 디지털 헬스케어와 관련된 강연 및 도서집필도 활발히 하시는 중이다. 내과 전문의 취득 후 McKinsey&Company 서울 사무소에서 컨설턴트로 일하신 경험도 있으시다.
(출처: 강의 캡쳐)
김치원 상무님은 이번 강연에서 전하신 내용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 새로운 기술을 의료와 연관시킬 때는 그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에서 원격진료가 법제화되는데 필요한 조건들과 코로나가 미친 영향이다.
새로운 기술은 가치를 가져야 한다. 그 가치란 무엇인가?
의료에 접목되는 새로운 기술이 갖추어야 하는 가치는 환자 예후 향상이다. 그것이 의료가 지향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보험 수가 적용 기준이 환자 예후와 관련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환자의 예후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먼저, 진단 플로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진단 플로우의 단계는 스크리닝, 진단, 치료, 모니터링이다. 스크리닝은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과도 같다. 진단은 대게 증상이 나타난 후 내리게 된다. 위험도 구분을 통해 고비용 검사 및 시술이 필요한 환자를 선별한다. 확진을 내린 후에는 동반 진단에서는 고가 치료에 효과가 있는 환자를 선별한다.
(출처: 강의 캡쳐)
새로운 기술들은 이 진단 플로우의 한 단계에서 작동을 한다. 기술이 예후와 가까운 단계에 속할수록, 기술의 가치 입증 방법이 수월하다. 예후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스크리닝 기술의 경우에는 환자의 예후에 이르기까지 고려해야할 요소들이 많다. 스크리닝의 가치 입증이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lead time bias라고 할 수 있다. Lead time bias란 진단 시점이 앞당겨져서 생존율이 증가한 것처럼 보일 뿐, 환자의 실제 사망 시기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의료 인공지능은 대부분 “의사를 도와” 진단 정확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3-4% 정도의 판독 정확도 상승과 환자 예후의 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의료 인공지능이 수가 적용을 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진단 정확도 상승보다 더 구체적인 가치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따라서 기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예후가 향상되거나 사회적 비용이 절감되는 등 구체적인 효과가 있어야 한다.
스크리닝의 효율화, 의료 인공지능 IDx-DR의 당뇨병 환자의 망막 선별 검사
IDx-DR은 의사 대신 당뇨병 환자의 망막 선별 검사를 분석하여 진단을 내린다. 이 제품의 가치는 무엇인가? 첫째, 망막검사를 받지 않아 시력을 잃었을 사람들을 선별하여 안과에 의뢰함으로써 환자들의 예후를 향상시킨다. 둘째, 검사를 받지 않았을 환자들이 시력을 잃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 이런 효과를 일으킨 요인은, IDx-DR이 망막 선별 검사를 분석하지 못하는 내과 의사들을 대신하여 분석해주기 때문이다.
관상동맥 조영술 대상 환자를 선별하는 인공지능 ‘The CT-Flow’
Heartflow라는 회사의 The CT-Flow는 관상동맥 CT에서 혈류까지 계산하여 환자의 위험도를 구분한다. 즉, 기존의 관상동맥 CT를 보완하여 관상동맥 조영술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저위험군 환자를 선별하는 것이다. 관상동맥 조영술은 위험한 시술이기에 The CT-Flow를 통해 불필요한 시술을 줄이는 것은 더 가치가 있다.
간편하게 심방세동을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Zio patch’
부정맥 환자가 병원에 오더라도 증상이 없으면 심전도 상으로 부정맥을 입증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는 24시간 동안 심전도를 체크하는 홀터 모니터링을 받게 된다. Zio patch도 홀터 검사처럼 환자의 신체에 리드를 부착한다. 그러나 홀터와 달리 리드가 한 개며 부착기간이 2주로 길다. 리드가 하나기에 홀터의 기능보다 월등히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심방세동 선별에 있어서는 유용하다. 무엇보다 홀터에 비해 작고 간편하다. 작고 간편하면서 증상을 선별할 수 있는 기간이 길고, 심방세동 선별에도 유용하다는 점이 지오 패치의 입증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원격진료가 한국에서 법제화되기 위한 조건
우리나라는 상급 병원에 대한 문턱이 낮아 의원급부터 상급병원들까지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 상급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강화되면 의원급 병원인 소위 동네 병원들은 사라진다. 이는 오히려 의료 접근성을 떨어트리며 상급 병원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경한 환자들은 의원급으로, 중증 환자들은 상급병원으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김치원 상무님은 원격진료 법제화에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다. 첫째, 원격진료를 의원급에서만 허용해야 한다. 상급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둘째, 재진 환자에 한해서만 허용해야 한다. 신환까지 허용할 경우 동네의원 간의 경쟁도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격진료 형태는 어떠할 것인가?
원격진료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플랫폼이 필요하고 이에 때라 플랫폼 개발 시장이 활발해질 것이다. 그러나 ‘배달의 민족’처럼 강력한 플랫폼이 나오긴 어렵다는 것이 김치원 상무님의 견해다. 왜냐하면-법제화가 위 두 조건을 따른다는 전제 하에-병원은 플랫폼을 통해 신환 환자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격진료 플랫폼을 개발하고픈 스타트업이라면 “원격진료 솔루션 제공 업체”가 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경험이 때론 기회가 되다.
코로나19 이전까지 화상회의, 재택근무, 비대면 수업들은 ‘굳이’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는 비대면 시대를 경험해보았다. 원격 진료도 마찬가지다. 락다운을 시행했던 국가에선 원격진료가 불가피했다. 그러나 원격진료를 시행할 강제적인 상황이 없었던 한국에서는 원격의료를 경험할 기회가 적었다. 원격진료를 시도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인 소비자들의 요구 또한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의 원격의료가 법제화되는 양상은 두고 지켜봐야할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에 관심이 있거나 이 기사를 흥미롭게 읽은 독자들은 김치원 상무님이 운영하시는 블로그 Healthcare Business (wordpress.com)에 접속해보아도 좋겠다.
김현 기자/연세원주
<lisa0512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