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의사 ‘Dr. Watson’의 A to Z

인공지능 의사 ‘Dr. Watson’의 A to Z

2012년 실리콘밸리의 투자자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는 “미래에는 의사의 80%가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옛날이라면 코웃음을 치고 넘겼을 발언이지만, 이제 점점 이러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작년 구글의 알파고(Alphago)가 엄청난 주목을 받은 이후, ‘닥터 알파고’에 해당하는 IBM의 왓슨(Watson)이 미래에 의사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년 가천대학교 길병원에 이어 올해 부산대병원에서 왓슨을 도입하며, 더 이상 왓슨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왓슨,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왓슨이 처음부터 ‘닥터 왓슨’으로서 데뷔했던 것은 아니다. 알파고가 바둑을 통해 유명해졌듯이 왓슨은 2011년 <Jeopardy!>라는 퀴즈쇼에서 인간 챔피언을 압도적으로 이기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퀴즈 문제는 컴퓨터 언어가 아닌 사람이 사용하는 ‘자연어’로 출제되었기 때문에, ‘사람처럼 이해’하고, ‘사람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보여준 인공지능 왓슨의 승리는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이후 IBM 왓슨은 암 진단 및 치료법 제시에 도전하겠다고 밝혔고, 방대한 의료 지식을 학습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 IBM은 왓슨이 60만 건의 의학적 근거, 42개의 의학저널과 임상시험 데이터로부터 2백만 쪽 분량의 자료를 학습했다고 발표했다. 왓슨은 세계 최대 사립 암병원인 뉴욕 MSKCC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수련도 받았으며 의사들은 왓슨을 가르치는 데 수천, 수만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방대한 의료 빅데이터를 학습한 왓슨이 미국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다가 최근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불안한 의사들

이러한 인공지능의 의료에의 도입을 보는 시각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섞인 반감을 가진 시각이 많다. MD 앤더슨 암센터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왓슨이 부정확한 치료법을 내어놓은 경우는 2.9%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매일 새로 발표되는 수 백 개의 논문을 읽고 ‘이해하는’ 왓슨의 성능이 점차 개선되면 곧 인간 의사를 훨씬 뛰어넘지 않겠냐는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과거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기계가 인간의 신체한계를 넘어서며 신체를 사용하며 일하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대량으로 잃었듯이, 이제 인간의 두뇌한계를 넘어선 인공지능이 ‘화이트칼라’ 지식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길병원이 지금까지 왓슨을 이용하여 진료한 백여 명의 환자 중 의사와 왓슨의 판단이 다른 경우가 4건 존재했는데, 놀랍게도 이 네 번의 사례에서 환자들은 모두 왓슨의 판단을 따랐다고 한다.
사실 의사가 하는 역할의 상당 부분은 대체될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에 이러한 걱정이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암묵지나 직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데이터나 근거에 기반하여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내리는 진단, 판독 등의 의사결정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공지능이 제시한 치료법 중에 무엇을 선택할 지는 인간의 몫으로 남을 테니,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고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역할까지 인간이 뺏기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점점 의사의 역할을 인공지능에게 내주게 된다면 나중에 의사가 하는 일에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이 커져 가고 있다. ‘Swedish Cancer Institute’의 잭 웨스트(Jack West)와 같은 전문가들은 ‘결국에는 왓슨의 권고안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때가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주장한다.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다

지금까지 언급한 시선들은 인공지능을 잠재적으로 ‘의사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의사와 인공지능은 바람직한 협력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적지 않다. 인공지능 의료영상 스타트업 뷰노코리아(VUNO)의 이예하 대표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언제까지나 진단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의사를 도와주는 보조수단으로서 존재할 것입니다”라고 하며, “청진기, 엑스레이로만 진단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CT, MRI 등의 진단법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MRI가 생겼다고 의사가 대체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환자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고 진단이 정확해졌죠. 인공지능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또 다른 새롭고 정확한 진단방법이 등장한 것일 뿐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의사의 진단을 도우며 그 혜택은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왓슨을 인간을 대체할 존재로 보거나 경쟁 구도 양상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서울의대 의학과 김주한 교수는 “물론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더 발달하겠지만, 의료 서비스에서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따라서 의료 분야만큼은 인공지능을 사람의 경쟁상대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IBM 왓슨의 CTO, 롭 하이(Rob High) 조차 “왓슨의 목적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강화하는 것이지 결코 의사결정과정에서 인간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왓슨은 어떤 측면에서 의사와 바람직한 협력관계를 형성하여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될 수 있을까? 한 가지 측면은 왓슨의 방대한 데이터 처리 능력이 의사의 진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뛰어난 인간 의사도 방대한 양의 의료 정보, 쏟아져 나오는 최신 연구 결과들을 모두 소화하고, 진료에 응용하기는 힘들다.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는 데이터가 사이버공간에 범람하는 빅데이터의 시대에, 일반 컴퓨터 2880대에 해당하는 성능을 가진 왓슨을 활용하는 것은 매일 발표되는 최신 연구 결과와 임상데이터를 의료 현장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왓슨은 근거 중심 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을 구현을 도와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IBM 소속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마티 콘(Marty Kohn)은 소수의 정보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닻내림 효과’가 진료실에서 항상 발생하며 의사의 실수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왓슨은 방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단 하나의 답만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가능성 있는 답을 도출해 주기 때문에 이런 실수의 발생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 외에 왓슨이 하루에 수십명을 진료해야 하는 종양내과 의사들의 과중한 업무부담을 줄여 의료의 질 개선에 기여하리라고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만의 ‘왓슨’이 필요하다

왓슨의 유용성에 대한 이야기와 별도로, ‘인공지능 의사 = 왓슨’의 수식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떠오른다. 인공지능 기술을 의학에 적용하는 사례가 IBM말고 국내에서는 없는 것일까. 최근 산업통상부에 의해 서울아산병원은 ‘폐, 간, 심장질환 영상판독 지원을 위한 인공지능 원천기술개발’ 책임기관으로 선정되어 ‘인공지능 의료영상 사업단’을 발족했다. 사업단의 단장 서준범 교수는 “의료에도 주권(主權)이 있다. 외국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기술을 국내에도 도입해 잘 활용하면 안되냐는 발상은 성급하고 위험하다”라고 하며, 국내에서도 독자적으로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플랫폼을 구축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보가 곧 힘이 되는 미래시대에 의료 빅데이터에 대한 국가 간의 경쟁이 심해질 것은 자명해 보인다. 국내 환자들의 의료데이터를 지키고 미래 의료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정부, 학계, 연구 분야가 협력하여 제 2의 ‘닥터 왓슨’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뇨기과 의사 신태영 교수는 인공지능 왓슨이 국내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며 “나는 더 이상 국내 병원에서 왓슨 도입 기사를 보고 싶지 않다. 늦었더라도 국내 기업에서 왓슨에 버금가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완성했다는 기사가 훨씬 기다려진다.”라고 남겼다.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암 분야의 왓슨 말고도 의학의 여러 다른 분야로 인공지능은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 의대생들이 미래에 의사가 되었을 때 인공지능과 어떤 방식으로든 큰 영향을 주고받을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 윗세대는 인공지능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고 은퇴해버리고 우리 아래 세대는 달라진 인공지능 의료 시대의 교육을 제대로 받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이에 낀 불운한 ‘과거의 교육을 받고 미래를 살아가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의료인으로서 당당히 의료계를 이끌고 미래를 개척해나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의학의 모든 영역의 어제 나온 논문까지 모두 검색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간 의사를 뛰어넘는 분석능력을 가지게 되더라도, 인공지능이 활용하는 재료가 되는 새로운 의학지식을 연구 및 생산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다. 연세의대 전우택 교수는 “미래 의사는 완전히 두 종류의 직종으로 나뉠 것임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이 지시하는 대로 환자에게 진료를 제공하는 의사 집단과 그 인공지능에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입력시키는 의사 집단”이라고 예측했다. 제대로 된 좋은 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 능력과 더불어, 인간 대 인간으로 환자를 대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필요하다. 미래의료학자 최윤섭 박사는 “연구에 따르면 종양내과 의사는 평생 2만 명의 환자에게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의대에서는 환자에게 이를 어떤 방식으로 전해야 할지는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기계 의사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 의사에게 인간적인 측면이 더 강조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적었다. 질병과 죽음을 마주하고 나약해질 수 있는 환자의 불안한 심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지금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왓슨을 대표로 하는 인공지능 때문에 의사의 역할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지금과 달라질 것임은 분명하다. 여기에서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남을 인간의 고유한 역할, 그리고 인공지능의 활용으로 인해 새롭게 생겨날 역할이 무엇일지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에 의해 달라지는 이러한 미래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미래인 의료인인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선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기계와 함께 달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김경훈 기자/울산
<gutdokto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