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감염인의 병원 가는 길이 두렵지 않도록

 

박상영 작가의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에는 주인공 영이 자신이 감염된 HIV 바이러스에 ‘카일리’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HIV 감염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바이러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을 향한 사회적 차별임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는 소설적 장치이다. 실제로 HIV 감염인을 향한 차별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고 현재진행형이다. 의료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이는 지난 5월 HIV 감염을 이유로 디스크 수술을 거부한 한 병원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6년에 실시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HIV 감염인 중 76.2%에 달하는 응답자가 ‘다른 질병으로 병원 방문 시 HIV 감염인임을 밝히기 어려움’에 매우 또는 대체로 그렇다고 답변하였다. 다른 한 조사에서는 HIV 감염인 중 지난 1년간 자살 생각을 해 봤다고 응답한 비율이 동 연령대의 비감염인에 비해 20배 넘는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이처럼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실제로 그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협하는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HIV 바이러스는 신체 방어체계가 약해지도록 특정 유형의 백혈구를 파괴하는 바이러스로,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이라고도 하는 AIDS의 주된 원인이 된다. 혈액, 성매개 감염병으로 대부분의 경우 성적 접촉을 통해 전염되고,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HIV 전파 우려를 이유로 환자를 격리하거나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반지성적이다. 이는 검증된 의학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질병관리청에서 작성한 ‘HIV 감염인 진료를 위한 의료기관 길라잡이’에 따르면. HIV/AIDS는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이며, 조기에 진단되어 항레트로바이러스제로 치료받을 경우, 건강을 유지하여 비감염인들과 같은 여명을 가질 수 있고, 타인에게는 전파시킬 위험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HIV 감염인 차별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결합되어 더욱 무서운 양상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원인이 ‘동성애’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인식은 19대 대선토론 때 한 후보자가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한다’라고 주장한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역시 차별적일뿐더러 의학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도 않다. HIV/AIDS의 감염은 체액이나 혈액의 접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정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특정 바이러스에 더 잘 감염된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물론 일부 국가에서는 HIV 감염 경로 중 동성 간 성 접촉의 비율이 높은 경우도 보고된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차별과 혐오,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 등을 원인으로 꼽지, 특정 성적 지향을 감염에 대한 취약성의 원인으로 꼽지 않는다. HIV 감염에 성소수자들이 취약하다는 통계가 일부에서 보고된다고 해서 그것을 그들의 성적 지향 탓으로 낙인찍고 사회적 혐오를 강화하는 것은 성숙한 사회 구성원의 자세가 아니다. 정말 안타까운 지점은 정말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무분별한 혐오의 대열에 의료인들도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증된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동료 시민들의 오해를 푸는 데 앞장서야 할 의료인들이, 그들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무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런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성찰을 바탕으로 한 의료계의 자정 노력이 시급하다. 차별과 낙인은 보건학적으로도 긍정적인 결과를 산출하지 못한다. 감염된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회에서 소외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자명하다.

 

질환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은 의료기관이다. 그러나 인권위 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 HIV 감염인들에게 의료기관은 여전히 두려운 공간이고 실제로 차별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이들은 치료/수술/입원 시 감염예방을 이유로 별도의 기구나 공간을 사용했고(40.5%), HIV 감염사실 확인 후 약속된 수술을 기피당하거나 거부당하였다(26.4%). 의료인의 동성애자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차별적 태도도 응답자 중 무려 21.6%가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는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WHO가 건강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로 정의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차별은 인간의 건강에 다방면에서 악영향을 끼친다. 차별과 혐오가 중첩되어 사회적 건강뿐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까지 위해를 가하게 되는 것이다. 건강권을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평등하게 보장하기 위해서, 의료 영역에서의 차별과 혐오는 반드시 배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의료인 양성 과정에서부터 차별 없는 의료를 제공할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실제로 인권위 조사에 참여한 HIV 감염인의 상당수(61.8%)가 의료 차별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으로 (예비) 의료인 인권교육을 꼽았듯, 의대생을 비롯한 예비 의료인들에 대한 인권 교육의 강화는 그러한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할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준서 기자/순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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