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3월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소아청소년과 폐과’를 선언했다. 갑자기 소아청소년과를 폐과한다니 보호자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소아청소년과 폐과 논란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회장은 “오늘 한없이 참담한 심경으로 이 자리에 섰다. 도저히 하고 싶어도 이 나라에서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살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려 있다”며 “지금 이 상태로는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고 밝혔다.
그는 “동네 소청과 의원은 두 명 있던 직원 월급을 못 줘 한 명을 내보냈다. 결국 지난 5년간 소청과 662개가 폐업했지만, 소청과의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30년째 동결 중”이라며 “이는 소청과 문제뿐 아니라, 소아외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신경외과, 소아마취과, 소아안과, 소아응급의학과 등 소아를 다루는 전 의료영역의 의사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있는 소청과 의사들을 소송에 내몰고 있는 현실이다.
임 회장은 “그동안 수없이 죄수복 입은 소청과 전문의들 면회를 갔고, 이분들을 위해 법률 지원, 시위를 하면서 소청과 의사들을 이렇게 대우하면 몇 년 못 가서 소청과 지원자가 없어져 아예 과가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며 “소청과 의사들에게 법원은 실형과 거액을 배상하라고 선고하고, 일부 의료 전문 변호사는 하이에나처럼 이길 수도 없는 소송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기획재정부의 미흡한 정책들을 질타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귀하고 통찰력 있는 말씀을 하셨고, 시원시원하고 한 번 결심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생각한다”며 “막상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복지부는 무너진 소청과 의료 인프라를 바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무너뜨리는 정책들과 미흡하기 그지없는 정책들을 내놨다”고 전했다.
소청과의사회는 복지부가 마련한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소아암 진료체계 구축,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확충, 달빛어린이병원,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 시범사업 추진, 심층상담교육 시범사업, 소아 입원진료 가산 확대, 의료인력 운영 혁신, 적정 의료인력 양성 지원 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폐과 선언은 전국에 있는 모든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소아청소년 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단 폐과를 선언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주로 1차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개원의로 구성돼 있다. 즉, 동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운영하는 이들이 폐과를 선언한 것이다. 폐과를 선언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소속 의료기관이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아예 중단하는 것도 아니다. 의료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대부분은 소아청소년 진료를 계속한다. 말 그대로 간판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뺄 뿐이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2, 3차 의료기관)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폐과 선언과 상관이 없다.지도전문의, 교수, 전공의 등 2, 3차 의료기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대거 소속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아청소년과 전문과목을 끝까지 사수하며, 소아청소년과 국민의 건강권 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학회 측은 “소청과 의사회가 ‘폐과’라고 표현한 것은 불가피하게 소아·청소년 전문 진료과목 표방을 내려놓고 일반진료로 다변화해 살길을 찾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폐과 선언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배출도 별개의 문제다. 앞으로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양성은 계속된다.
한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간판을 포기하는 의사들은 이미 적지 않고, 폐과 선언과 별개로 타 질환 진료기관으로 전환을 준비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도 상당수로 확인된다. 지난 5년간 600여개가 넘는 소청과가 폐업했지만,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30년째 동결 중이어서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게 이들의 호소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전국에 있는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2022년 8월 말 기준, 3247개소다. 지난 5년간 소청과 617곳이 새로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했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된 2020년, 2021년 두 해에만 78곳의 소청과가 순수하게(개업-폐업) 사라졌다. 병원 몇 개 줄어드는 것이 뭐 그렇게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병원이 지역 내에 있는 유일한 소청과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임회장은 “앞으로 소청과 의사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지 않고 ‘노키즈 존’에 해당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라며 “소청과의사회는 소청과 의사들이 다른 일에 종사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할 수 있는 교육센터를 만들어 운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본인 적성에 맞는 다양한 분야에 대해 신청을 받을 것이고, 아이들을 보지 않고, 어른들만 보면서 충분히 병원 운영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진료를 바꿀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며 “이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1년 정도 걸릴 거라 본다. 대략 90%의 회원들이 적극 동조 내지 심정적 동조를 하고 있고, 아무리 적어도 반 이상은 따라올 거 같다”고 강조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도 내과, 통증의학과, 피부과 등으로 개원하기 위해 타과 학회 수련을 받는 경우는 10~30%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임회장은 “소청과 의사들은 더 이상 아이들 건강을 돌봐주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한없이 미안하다는 작별인사를 드린다. 한없이 반가웠고, 보람있고, 기뻤고, 감사했다”고 덧붙였다.
오예지 기자/차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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