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폴 의존성의 메커니즘으로 보는 질병으로서의 물질사용장애

프로포폴은 수술이나 검사 시 의식하 진정, 성인 및 3세 이상 소아의 전신마취 유도 또는 유지, 인공호흡기 사용 환자의 진정에 사용되는 물질로, 수면내시경이나 간단한 시술 또는 성형수술에 적용되기도 한다. 중추신경계 전반을 억제함으로써 진정수면 효과와 항불안 효과를 나타내며, 정맥으로 투여되어 체내에 빠르게 분포되어 평균 30초 정도 후에 마취 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에 거의 녹지 않아 대두유를 용매로 사용한 oil-in-water emulsion으로 제형화되어 우윳빛을 띠는데, 이 때문에 이른바 ‘우유주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작용 기전은 명확하게 규명되어 있지 않다. 프로포폴은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과 바르비투르산염(barbiturate) 등의 다른 진정수면제와는 연관성이 없는 약물이다. Cl channel을 열어 신경세포의 과분극을 유도함으로써 억제성 신호를 전달하는 GABA 수용체 촉진 작용과, 흥분성 신호를 전달하는 NMDA(N-methy-D-aspartate) 수용체 차단 작용을 통한 글루탐산염 활성의 감소가 주 골자라고 생각되고 있다.

프로포폴은 다른 진정수면제에 비해 복용 후 숙취(hangover), 즉 오심과 구토가 덜할 뿐 아니라, 통증이 덜한 시술의 경우 진통효과로 인해 환자로 하여금 깨어날 때 통증은 느끼지 않으면서 개운하게 잘 잤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또한 불면증을 없애고, 피로를 해소할 뿐 아니라 불안감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등 환각을 일으키는 효과도 있어 환각제 대용으로 오남용되는 사례가 있다.

국내외적으로 프로포폴의 중독 및 오남용 사례가 빈발함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1년부터 프로포폴을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승인을 받은 경우를 제외하면 향정신성의약품의 사용 및 소지, 매매 및 알선, 원료의 재배 등은 모두 금지되어 있다.

대부분의 향정신성의약품과 달리, 프로포폴은 자율신경계 증상을 위시한 신체적인 금단현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의료전문가들은 프로포폴이 타 향정신성의약품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는데, 신체적 의존성이 약하다는 이유이다. 신체적 의존은 만성적인 사용의 결과 신체가 약물에 적응해서 내성이나 금단이 생기는 상태로, 물질 추구 행위에 대한 통제를 상실한 상태를 일컫는 정신적 의존과는 궤를 달리한다. 프로포폴이 신체적 의존 측면에서는 나머지 향정신성의약품보다 우월할지 몰라도, 정신적 의존 관련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아직도 프로포폴 상습 투약은 잊을 만하면 각종 언론에서 대서특필되며, 초조감과 불안 등 정신적인 금단현상은 다수 보고되어 있다.

이러한 정신적 의존성은 비단 프로포폴이라는 개별 약물의 특수성이나, 프로포폴에 중독된 개인의 자제심 또는 기질 문제가 아니다. 시험 기간이면 커피를 물처럼 마시거나, 운동을 하기 전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등 우리 주변에서 물질 사용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 중에서도 담배를 끊기 어려워하는 가족, 음주를 통제하지 못하는 친구 등에서 관찰되는 중독(addiction)은, 심리적 의존이 있어 습관적으로 자주 물질에 취해 있고, 약물 효과를 갈망하며, 탐닉하여 중단하지 못하는 행동을 일컫는다. 이처럼 물질을 남용하는 행동 양상에는 그 자체로 병적인 측면이 존재하는데, 이를 물질사용장애라 한다.

물질사용장애는 그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위해 더 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빈번히 사용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안녕을 위협받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물질사용장애의 본질은 물질을 획득 및 사용하려는 강력한 동기와, 이에 대한 통제력 상실에 있다. 중독자의 물질사용은 물질을 의도적으로 탐색하는 욕망적 행위와 획득된 보상을 향유하는 완료적 행위의 2단계 양상을 취한다.

도파민은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에서 기시하여 안쪽 앞뇌 다발(medial forebrain bundle)을 통해 변연계 측좌핵(nucleus accumbens)과 전전두엽으로 투사되는 중뇌-피질-변연계 보상회로에서 동기부여에 관여한다. 프로포폴은 변연계의 측좌핵에서 바로 이 도파민의 농도를 증가시킴으로써 약물을 지속적으로 갈망, 탐닉하게 하며 사용을 중단할 수 없게 한다. 프로포폴을 포함하여 중독을 일으키는 다양한 약물들의 일차적 표적은 아편유사제, GABA, 세로토닌 수용체, 도파민 수용체 등 다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보상회로의 도파민 활성을 증가시킨다.

오래전부터 물질 사용을 통제하지 못하는 행태는 개인의 도덕적 일탈 내지 의지 박약으로 간주되어 왔고, 현대에도 그 흔적은 대중의 인식 속에 깊게 뿌리박혀 있다. 그러나 도파민 활성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 완료적 행위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쾌감이 아닌, 욕망적 행위를 견인하는 동기라는 점은 궁극적으로 물질사용장애의 병적 측면을 시사한다. 동기는 욕망적 행위의 방아쇠(trigger)이므로, 쾌감을 얻기 위한 중독 대상의 추구는 일견 자유의지에 따른 자발적 행위로 보이지만,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유도되는 내인적 메커니즘의 산물이라는 속성 역시 갖는 셈이다. 요컨대 중독 환자의 대상 추구는 자발적인 동기보다는 내적인 강요에 의한 행위에 가까우며, 이 점이 물질사용장애를 질병으로 보는 시각을 뒷받침한다.

 


 

박수연/연세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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