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응급의료: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는?

한국의 응급의료: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는?

최근 몇 년 사이 “골든타임”, “낭만 닥터 김사부” 등과 같이 응급실을 배경으로 한 메디컬 드라마들이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다. 또한 ‘아덴만 영웅’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나 응급의학과 의사이자 작가인 남궁인 등 응급의학과 의료인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응급의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과연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현주소는 어디인지 과거로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응급의학의 출발

현대 의학은 점점 세분화, 첨단화 되어가지만 이에 반해 여러 가지 질환이 있는 환자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여 발전하게 된 분야가 응급의학이다. 1970년대 이후 미국, 서유럽 등의 일부 선진국들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늦게 도입되었다.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 도입

1980년대 들어 야간 통행 금지가 해제되고 교통이 발달됨에 따라 응급실의 수요는 늘게 되었고, 의료보험의 확대로 병원 문턱이 낮아져 진료 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1990년대의 연이은 대형 사고들은 응급의료체계의 도입의 필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비전문적인 응급의료 수준을 보여줘…

1993년 목포로 향하던 아시아나 733편이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때 척추 부상을 입은 환자를 보호 장치 없이 헬기로 들어올리는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었다. 결국 그 환자는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 이는 당시의 응급의료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후로도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의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 등의 인재를 겪으며 응급의료체계가 원시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체계적인 응급의료체계 도입을 불러온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현장에서는 선진국에서 이미 일반화되어 있던 중증도 분류(triage)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사고 초기에 인근의 강남성모병원 응급실은 마비된 반면 서울대 병원에는 한 명의 환자도 이송되지 않았다. 결국 강남성모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재이송되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환자의 생명에 중요한 ‘골든아워’를 허비해 버린 셈이다.
1994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이 시행되고 응급의학이 전문과목으로 인정되었다. 이후 1996년에 제1회 응급의학전문의 자격시험이 시행되어 51명의 전문의가 배출되었다. 2000년에 들어 환자이송업무 소방에서 전담, 응급환자정보센터를 응급의료정보센터로 개칭하고 대한적십자사에서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이관, 국립의료원이 중앙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었다.

아덴만 여명 작전과 석해균 선장
– 중증외상센터 설립의 계기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쥬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은 선원 구출작전 과정에서 여러 군데 총상을 입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석 선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한국으로의 신속한 이송이 필요했는데 정부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에어 앰뷸런스(Air Ambulance)가 현지로 급히 파견되었는데, 사비를 털어서라도 환자를 살려야 된다는 일념으로 이국종 교수가 강력히 주장하여 이루어진 결과였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중증외상환자와 그 치료 현황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의료계와 보건당국이 중증외상치료의 중요성을 느끼고 전국적으로 중증외상센터가 설립되기 시작되었다.
중증외상센터란 일반 응급실에서의 처치 범위를 넘어서는 외상의 정도를 가진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와 수술을 시행하여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해낼 수 있는 시설, 장비, 인력을 갖춘 센터를 말한다.
2012년 5월 14일 개정된 응급의료법에서는 중증외상센터의 설립 등의 내용이 담기게 되었다. 그 이후 권역외상센터와 지역외상센터가 각각 지정되고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외상센터 설립되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

이국종 교수는 지난 달 “말하는대로”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권역외상센터는 국가가 국민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사회안전망이다. 하지만 현재 중증외상관리시스템은 한국 의료에서의 실패 영역 이라고도 말한다. 우리나라의 30대와 40대, 즉 사회의 근간이 되는 젊은 세대들이 사망하는 원인의 많은 부분을 외상이 차지한다. 따라서 증증 외상 사망률을 낮추는 것이 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 분야의 90% 이상을 민간 영역, 즉 사립 병원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병원들은 이윤 추구에 집중하게 되고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꺼려하는 경우도 있다. 재원과 전공자 역시도 부족한 상황이다. 물론 정부의 정책과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각각의 병원과 의료인 개개인의 소명 의식이 없다면 응급의료 분야의 발전은 외면 받게 될 것이다.

임경예 기자/가천
<kyoungye88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