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의무를 법적 의무로, ‘설명의무강화법’ 시행
과거 병원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제공하는 일방향적인 의술이 주로 이루어 졌다. 그러나 오늘날의 의료 환경을 보면 의술이라는 말 보다는 의료 서비스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스마트폰 등의 발달로 누구나 의학 관련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요즘, 환자는 여러 병원 중 자신에게 맞는 곳을 선택한 뒤 자신이 지불한만큼의 의료 서비스를 기대한다. 또한 의사 역시 권위를 앞세우기보다는, 환자에게 귀기울이고 환자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처럼 환자의 권리가 향상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의사의 여러 가지 의무가 강조된다. 그 중 최근 강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설명의 의무이다. 이는 의사가 의료행위를 할 때 환자에게 상세한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야 하는 의무이다. 이를 통해 환자는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의료행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설명의무강화법’의 등장
오는 6월 21일부터 의사의 설명 의무를 강화한 의료법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발의된 일명 ‘설명의무강화법은 의사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 등을 시행하기 전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후유증, 부작용 등의 내용을 서면으로 동의 받도록 하는 규정이다. 따라서 의료진은 의료행위 시 환자에게 발생 가능한 증상의 진단명과 수술 처치의 필요성, 방법과 내용을 설명해야 하며 변경시에도 해당 사유와 내용을 환자에게 서면 공지하도록 했다. 다만, 그 절차로 인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질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예외를 두었다. 그 내용이 보다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하위 내용이 구체화될 예정이다.
법과 의료 현실 사이에 놓인 ‘설명의무강화법’
일부 의료계에서는 법안과 의료 현실 사이의 괴리로 인해 야기될 혼란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먼저 법 규정만으로 진료현장 상호아에 대처할 수 없으며 기존에도 설명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던 의사들이 강화된 법적 제재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설명 과정에 과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어 치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 전달의 의미 이상으로,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과정과 절차를 과도하게 제재할 경우 신뢰를 쌓기 보다는 의료 소송 남발의 여지만 만들어 낸다는 입장이다.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상업적인 수술을 위주로 하는 분과를 기피하는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개정법의 최초안은 모든 수술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심의과정에서 검사, 진찰, 프로포폴 수면마취, 투약, 시술 등 대부분의 의료행위가 제외되었다. 그에 따라 비보험진료를 주로 하는 미용성형시술 의료인은 보호받게 되고 오히려 중증 환자의 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의 외과 의사들만 법의 감시 아래에 놓이기 된다는 의견이다.
아무리 의료 관련 정보의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환자들은 의사의 말 한마디에 희망을 가지기도 하고 낙담을 하기도 한다. 특히 수술 등을 앞둔 중증 환자일수록 그런 경향이 뚜렷하다. 그렇다면 과연 의사들은 환자에게 어느 정도까지의 정보를 알려주어야 하는 것일까? 단순히 법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극미한 가능성이 있는 부작용까지 일일이 나열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 설명의무강화법의 목적은 결코 의료인 단죄는 아닐 것이다. 의료 사고를 줄이고 환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마련되었을 법안이다. 어떻게 하면 그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을지 법안이 시행되기 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임경예 기자/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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