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의학: 기초와 임상 그 중점에서
의사, 중개의학으로 새로운 길을 열다
의과대학을 졸업 후, 기초의학의 길을 걷는 의대생의 비율은 꾸준하게 감소해왔다. 요즘에는 정말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수가 매우 적은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꽤나 당연하지만 돈벌이가 임상의에 비해 턱없이 적을 뿐만 아니라 연구비 지원 역시 공대, 자연대 등에 비하여 상당히 빈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기초의학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 연구 산업이 생명과학 쪽으로 많이 넘어간 상태이고 연구에 국한하여 봤을 때는 꼭 MD 출신과 비 MD 출신을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학과 생명과학을 동일시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같은 연구를 진행한다 해도 MD 출신이 꼭 필요한 경우가 있고 이러한 이유로 의학계에서는 계속해서 MD 출신 기초의학자의 수가 감소되는 것을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금이나마 임상의학과 기초의학의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개념이 ‘중개연구’, ‘중개의학’이다.
임상과 기초를 연결해주는 ‘중개연구’
중개연구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암 발견을 위한 바이오마커(biomarker)에 관한 논문에서 바이오마커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이해를 위해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가 필요함을 밝히고 있다. 중개연구란 간단히 말해 기초과학의 연구 결과를 실제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연구를 뜻한다. 특히 의학 분야에서 중개연구가 비중있게 다루어지는데 기초연구의 결과가 병원에서 새로운 치료법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는 중개연구의 개념을 “기초연구 결과를 임상적용 가능한 새로운 치료법(의약품, 의료기기, 진단 및 치료기술)으로 전환하는 것과 임상연구에서 얻어진 새로운 관찰이 기초연구를 촉발하는 것”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기초 의학의 결과를 임상으로 끌어들이는 것(bench to bed) 뿐만 아니라 반대로 임상 의학에서 생긴 관찰을 다시 기초 의학에 연결해주는 것(bed to bench)까지 중개 연구에 포함시키고 있다.
의학에서 기초와 임상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왜냐하면 현재 임상에서 쓰이고 있는 대다수의 신약들이 기초 연구에서의 성과를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기초에서 이루어진 혹은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연구들이 임상에서의 궁금증으로부터 촉발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질병이 임상적으로 발견되고 나면 해당 질병에 대한 실험적 모델이 고안된다. 연구실에서는 모델을 테스트하며 질병의 기전을 밝혀내고 질병을 타개하기 위한 치료법을 개발한다. 기초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치료법이 과연 인체에 해는 없는지 임상 연구를 거친 후 충분히 사용가능하다 판단된다면 실제 임상에서 쓰이게 된다.
10년 전부터 중개의학에 집중투자 해 온 일본과 미국
미국에서는 중개의학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이에 대한 사업이 진행된지 오래이다. 실제로 생명과학에 많은 투자를 통해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가 나타난 것에 비하여 정작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치료법은 그다지 많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Clinical and Translation Science Award(CTSA) 사업을 진행하며 미국 전 지역에서 중개임상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플랫폼 및 인프라 구축에 나섰으며 그보다 앞서 1998년에는 보스턴 지역의 의료 및 공학 연구 관련 12개 기관 및 6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여 유망한 중개연구 관련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일본 역시 기초 생명과학의 성과에 비해 임상으로의 연계가 미흡함을 인식하고 2007년부터 중개 연구 관련 프로그램을 시행하였다. 2007년을 시작으로 5년 동안 1기 중개연구지원추진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2012년부터 작년까지 5년간 2기 중개연구가속네트워크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완료된 상황이다. 이 사업을 통해 도쿄대학, 삿포로의과대학, 나고야 대학 등 전국 7개 대학을 중개연구 거점 기관으로 지정하였고 막대한 양의 연구비를 지원하였다.
우리나라 중개의학의 미래
우리나라 역시 중개의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각 대학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소를 개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천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고려대학교, 단국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순천향대학교, 아주대학교, 울산대학교, 원광대학교, 전북대학교, 한림대학교 등 많은 의과대학들에 중개 연구소 혹은 연구센터가 갖추어진 상태이다. 서울대학교에서는 2014년 중개의학전공 대학원 과정을 신설하며 본격적으로 중개의학 인재 육성에 나섰다.
대학 차원에서 중개의학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해도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먼 것이 사실이다. 중개연구는 그 특성상 대학의 단독 질주만으로는 어떠한 성과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막대한 지원을 배경으로 하여 미국에서는 이미 병원이 생의학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한지 오래이며, 이와 같은 추세를 따라 일본 역시 병원 기반의 중개 연구 체제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중개연구의 성공에 있어서는 기초연구자와 임상의사의 협업이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개 연구에서 나온 성과가 실제로 상용화 될 수 있도록 기업과의 연계 역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끝으로 ‘눈앞에 당장 성과를 보여야 하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연구 행태도 차차 지워나가야 할 것이다.
윤명기 기자/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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