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보다 ‘암 이후의 삶’이 더 고단한 암 생존자들

암 투병보다 암 이후의 삶이 더 고단한 암 생존자들

국내 암 생존자 146만 명. 더 중요해진 암 극복 후의 삶

언제나 병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와 우리를 당혹감에 빠뜨린다. 특히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불치병인 암에 걸린 환자들에게 당장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암을 극복하고 ‘생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된 치료과정을 거쳐 암을 이겨낸 환자들이 다시 사회에 나오면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냉혹하게 바뀌었음을 깨닫게 된다. 암에 처음 걸렸을 때와 비슷한 좌절을 다시 겪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암이 낫기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한국인의 3대 사망원인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암이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암이 사망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현저히 감소했다. 2010-2014년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3%로, 1996-2000년 44.0%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치료 기술의 발달과 평균소득 상승의 영향이다. 한편으로 기대수명도 상승했다. 한국인이 기대수명 82세까지 살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무려 36.2%다. 암 생존율 개선과 기대수명 상승이 맞물려 국내 암 생존자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2015년 1월 기준 암 생존자는 총 146만 명으로, 국민 35명 중 1명은 암 생존자인 셈이다.

암 치료중인 환자 또는 완치 후 생존자가 이렇게 많아졌다는 점은 이제 암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의 패러다임에 조금씩 전환이 필요한 시점임을 시사한다. 지금까지는 암이라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치료할지에 우리 사회의 모든 관심이 머물러 있었다. 지금은 점점 달라지고 있다. 더 이상 암은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극복한 후 어떻게 남은 삶을 이어나갈지의 문제다.

암 생존자들을 괴롭히는 실직과 복직의 어려움. 사회의 부정적 시선 탓

암환자들이 회복 후 사회로 돌아오면 이전과 많은 것이 달라지지만 이 분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는 바로 실직이다. 국립암센터에 의하면 암환자 중 46.8%가 암 진단 후 고용 상태가 변했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이들 중 실직한 비율이 84.1%에 달했고 무급휴직은 9.7%, 유급휴직은 1.7%로 나타났다. 또한 암 진단을 받은 뒤 의료비 마련을 위해 재산을 처분한 사람의 비율은 14.4%, 의료비 부담으로 암 치료나 검사를 포기한 경험이 있는 비율도 9.7%로 조사되었다.

암 생존자 중 20-49세 핵심생산인구에게는 지속적인 경제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토록 많은 환자들이 실직을 겪고 사회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첫 번째 원인은 암 생존자들이 피로, 식단 조절, 재활운동 등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복직하는 데 신체적인 문제보다 더 큰 원인은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에 있다. 충북대병원이 일반인들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암 경험자들은 통증으로 작업 능력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항목에 대해 70%가 넘는 사람들이 동의한다고 답했다. 암 생존자들의 업무능력을 심각하게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암 생존자들은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질 것이고 우울증으로 업무가 힘들 것이라고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 병력이 없는 성인의 24%가 ‘암 진단을 받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연구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암 생존자들이 매일 상처를 받는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불안, 우울 증세가 생기는 환자가 적지 않고 이것은 실제로 업무능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이다.

암 생존자들에 대한 미흡한 지원. 제도 개선과 인식 전환이 필요

이러한 실직의 위협은 개인의 비극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을 초래한다. 암 생존 이후 경력이 단절되면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을 겪는 것을 넘어 ‘생산 활동인구 감소’, ‘국가 의료비 증가’ 등의 사회적 비용 발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암 생존자를 위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반은 부실하다. 정부, 건강보험제도, 의료기관에서 암의 조기 발견과 의학적 치료에 초점을 맞추었지 암 생존자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 경험자를 위한 직업재활이나 직업훈련, 구직 정보 제공 시스템은 거의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건강보험제도 역시 암 치료 이외의 암 생존자 진료에는 별도의 지원이 없었다.

다른 나라들의 사정은 어떨까. 독일, 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선 많은 회사들이 암 생존자가 회사에 복귀해 정착할 수 있는 복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고, 이를 전담하는 인력까지 배치한다. 미국은 많은 병원에서 체계적인 ‘생존자관리계획’을 제공하고 이에 대해 약 50달러 정도의 수가를 받는다고 한다. 이 ‘생존자관리계획’은 암 생존자에게 이들의 치료력을 정리하고 시기마다 필요한 서비스를 제시하는 문서를 제공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미국은 암환자가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암 생존자의 삶의 질에 대한 지원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암 생존자 지원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복지부가 작년 발표한 ‘제3차 국가암관리종합계획’에는 ‘암 생존자 통합지지체계 구축’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복지부에서는 또 암 생존자를 위한 권역별 통합센터도 올해 안에 3곳을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몇 달 전 전북대병원는 시범사업기관으로 지정되어 암생존자 통합지지센터를 설립하였다. 암 생존자가 경험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심리 및 재활 관련 전문가들이 다학제적 팀을 구성해 접근할 계획이다.

바뀌어야할 점은 환자들이 암 이후 직장에 복귀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아무리 제도와 프로그램이 마련되어도 암 생존자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큰 변화가 만들어질 수 없다. 암과 실직의 어려움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든 나의 문제, 내 가족의 문제로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암 이후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암의 진단과 치료에만 제한된 시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김경훈 기자 / 울산

<gutdoktor@naver.com>